화요일, 2월 24, 2004

예수님의 별세

2004년2월22일 소망교회 주일낮예배설교
눅9:28-36
예수님의 별세

우리 인생의 신앙에 대한 의식들은 다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것은 미신적 요소로서 사람들의 의식의 정도적 차이가 있을뿐 모두 있다고 함을 말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자신을 아는 마음과 동연적으로 하나님을 알며 스스로 알아가도록 이미 같이 창조해주셨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인류가 죄 가운데서 진정한 그 하나님을 아는 마음이라고 함의 실제를 말하지 못하는 자리에 서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을 찾으려는 마음이 허망한 것을 찾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신이 아닌 진정한 신앙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더욱 하나님을 모르는 가운데서 배척적인 죄악에서 벗어나게 되어지는 그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서 분명한 견해를 가지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즉 그 분명이라 함은 어떤 기준을 말하는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주님 자신의 별세에 대하여서 증거하심에서 읽게 하시고 있음을 주목하며 증거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28절에서 31절까지의 말씀과 32절에서 36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28절에서 3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누구냐는 그러한 대중들의 판단들과 주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한 질문과 그에 따른 베드로의 고백으로써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심(눅 8:20)을 나타내었던 그러한 일이 있고 난 다음 8일 만에 주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산(이후 변화산으로 불림)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체가 나타나며 그곳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고 있음과 그 영광 중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32절에서 3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베드로가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님의 영광과 함께 선 두 사람을 봄과 그는 두 사람이 떠날 때에 초막 셋을 짓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이것은 베드로가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라고 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구름이 저희를 덮는데 제자들이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아들 곧 택함을 입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하시고 소리가 그치매 예수만 보임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 일은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심을 의지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음에 대한 것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되어지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예수님 자신의 별세’입니다. 이것은 졸던 베드로도 잠이 아주 깨어지는 가운데서 주목하도록 하시의 은혜를 입었던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별세라는 이 말은 죽음(decease)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이해되어지고 또한 영역본에서는 어떤 출발(departure)을 의미하는 것이나 퇴장(withdrawal)되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신 별세라는 말은 엑소도스(e[xodo")라는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죽음이라고 하는 말로 해석되어짐보다도 실제적인 자기 계시적인 그러면서도 그 주관이라고 하는 것이 절대의 자기 정당함에서 실제를 말하게 되어지는 증거의 말씀으로 나타남을 주목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별세 즉 주님이 말씀하신 자신의 별세 자신의 엑소도스라는 말은 출애굽과 관련되어진 것으로 받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 같이 증거자로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모세의 증거와 같이 이후에 자신과 같은 선지자가 있을 것에 대한 예언과 그 예언의 실재가 바로 주님 자신이심에 대한 것을 의식하시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구약에 증거적 정당함을 말하게 되어지는 율법에서의 증거는 두 사람이상 있어야 할 것에 의거해서 두명이 나타나고 있고 그 모세와 또한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라고 하였던 것과 같이 그러한 사역을 예언한 말라기의 엘리야의 예언과 그의 증거에 따른 자가 바로 예수님이심에 대한 것을 변화산에서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황과 문맥속에서 주님의 엑소더스를 말씀하심은 출애굽의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탄생과 정체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 즉 엑소더스를 하실 것에 대한 것을 말씀하심은 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게 되어지는 가운데서의 주의 몸된 교회가 공식적으로 세워지게 됨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사도가 아니면서도 주의 제자인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글로써 그 상관성이라고 하는 것을 읽게 되어진다는 점에서 교회의 성립이 바로 주께서 말씀하시는 별세의 진정한 실제의 증거가 되어진다는 것을 받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즉 누가가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데오빌로에게 미루어 증거해야 할 때를 분별하였음에 대한 것을 말함은 앞서 변화산에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심을 받들어 오는데 그 때가 지나 이제 말하여야 한다는 그러한 증거로서 예루살렘에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신 증거를 기록하며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고 하는 것은 외적인 것이나 어떤 신비적 개념으로써 그 때 당시에 나타났던 것이 사실이면서도 그러한 실제들은 사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 즉 메시아 즉 그리스도 주님 앞에서 정당함을 입게 되어지는 종교적 성별을 의미하는 것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9장 20절에서 예수님에 대하여서 베드로의 고백이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증거와 같이 하나님의 기름부으심 즉 메시아 안에서의 성별적 정당함을 입은 자들이 주의 제자들이라고 함과 자신의 교회를 세우심에 대한 외적 증거를 나타내셨는데 이것은 그것을 보는 자들도 하나님의 크신 일이라고 함을 부인할 수 없는 핑계할 수 없는 주의 구원의 실제를 담아내며 증거하는 교회의 모습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떠나가심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과 등짐이라고 하는 이별이라고 하는 개념이 아니라 또한 세상의 존재를 전적으로 무의 상태를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택한 백성들을 주께로 인도하시는 그러한 목가적인 주의 양들을 치는 교회의 시대 예수님의 세우신 교회의 시대가 종말의 때임을 말씀하시며 이것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서의 의롭다 칭함을 받는 자들의 증거의 시대가 되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주님은 우리 성도를 세상에서 궁극적으로 데려가시지만 주의 구원을 이루심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에서 보존하시기를 위함임을 주의 기도에서 구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요17:15~17)

우리 성도들은 세상을 등진 가운데서 어떤 특정단체로서의 생활을 하거나 세상에 세속화되어져서 주의 빛을 잃어버리는 자들의 모습으로 있게 되어짐은 옳은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따른 구별과 그러한 증거들의 실제적인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설 때에 참으로 세상에 빛을 비추는 주의 구원을 증거하는 자들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별세하심 주님의 엑소더스는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주의 말씀하심을 따라서 그 정당함을 실제를 증거하는 가운데 세상에 확실성을 말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진정한 구원을 증거하는 종들로 서야 함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 자신이심을 믿는 가운데 하나님 없이도 세상의 평화를 말하고 있는 자들에게 구원과 평화의 실제를 부여하시는 그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의 진정한 구원과 화평이 있음을 증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의 구원하심과 화평케 하심을 증거하는 그 종들의 모습으로 온전히 세워지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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