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2월 13, 2004

나의 변명 나의 변론

2004년1월30일 소망교회 금요철야예배설교
욥13:1-28
나의 변명 나의 변론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하여서 변호하다는 개념이 필요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어떤 사실들이라고 함을 말함에 그 구체성과 실제를 드러내기 위한 노력으로 필요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변호한다는 것의 실재를 말할 수 없다는 사상 때문에 변호라는 것이 사실 되지 않지만 되는 것같이 동정을 구하는 것처럼 구차한 것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과 달리 실제를 말할 수 있는 자라고 하면 변론이라고 하는 것 변명이라고 하는 것은 구차한 것이 아니라 진정 실제적인 중요성과 그 합당함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읽게 되어지는 욥의 변론, 그의 변명이라고 하는 것이 후자의 경우로서 정체성을 가지는 것에 대한 시비가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19절까지의 말씀과 20절에서 28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19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앞서 욥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기술한 경험적 측면에서의 신앙에 대한 인식적 판단이라고 함으로 일관한 나아마 사람 소발의 답변에 대하여 경험적인 개념을 말할 때에 그만 못한 욥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함과 소발을 비롯한 빌닷과 엘리바스들이 거짓말 지어내는 자들이요 쓸데없는 의원이라고 함을 말하고 있으며 욥은 자신의 신실함을 하나님으로부터의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은 자신의 구원이 된다고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20절에서 28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욥이 주 하나님께 두 가지 일을 행하지 마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 구하는 바는 자신이 주의 위엄으로 두려워지는 자리에 서지 않기를 구하고 있고 주께서 자신에게 대적하심에 대한 것에서 썩은 물건이요 후패함 같으니 좀먹은 의복 같은 자로써 상대하실만한 존재가 아님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고 절대자와 피조물의 그 상관성으로 주님이 판단 받으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욥의 변명과 변론이라고 함이 실제적인 사실과 그 증거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함이 있어서 멸망에 이르지 않는 하나님의 뜻하심 안에 자신이 있다고 함을 말하고 있고 그 지식이라고 함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함에 대하여서 주 앞에서 그 실제적인 것에 자신의 존재와 관련성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말씀하신 그 뜻하심이라고 하는 것을 의식하고 말하는 욥인 것입니다.

여기서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상대적인 확실성이 없는 가운데 사람에게 유익이라고 하는 것에서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때에 그 지식에 자신의 실존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함을 말하는 것이 욥을 대적하는 자들의 모습이며 또한 오늘날의 사람들의 지식관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욥이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입은 실재로서의 사실을 말하는 하나님의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이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의 절대 정당함을 따르는 가운데서 진정한 실제를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에 대한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자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스스로 알고 계신 것과 같이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에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임을 인식할 수 있는 상태로 지음을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람의 존재라는 것은 순서적인 개념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연적으로 같이 창조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의 존재라는 것이 같이 있게 되어진다고 할 때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하는 것과 그것과의 우리의 존재는 동일하게 정당함을 입게 되어진다고 함을 말할 때에 욥은 그것이 자신의 구원이라고 함을 말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 인친 자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함을 증거함을 하나님께 아뢰어보며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입은 가운데서의 그 영광을 드러내는, 스스로 의로움과 구원을 이루게 되어지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욥이 표현하기를 그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는 것과 ‘내가 스스로 의로운 줄 아노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욥은 원한다는 자의 이름을 뜻을 가지고 있고 그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자와 같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하심을 따르기 원하는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주를 의지하여서 상대적인 불확실성에서도 주의 이름이 영광을 받기를 기도하는 성도의 길을 걷게 되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지식을 모두 가진 자이기 때문에 말하거나 하나님을 다 알기 때문에 말하는 것은 아니라 주의 말씀하심 안에서 부분적인 것이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확실성에서 증거의 진정한 실제를 가지고 그 증거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의 뜻하심을 실제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은 인식의 충족성의 시비를 걸며 하나님이 없다는 것과 도덕적 완성으로써의 신관으로 비판하게 되어진다고 하는 환경 속에 성도들이 피곤한 발걸음을 걷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곳에서 평안을 욥과 같이 구하며 주의 진정한 증거의 말씀 안에서 즐거워하며 주의 구원의 실제를 받으며 증거하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달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달리시고 하나님 앞에서 면류관을 받으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 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