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1월25일 소망교회 주일낮예배설교
눅8:1-21
좋은 땅을 사수하기
제국을 호령했던 알렉산더대왕도 한 평의 땅을 차지하는 것에 대한 역사가들의 판단이 있는 것과 같이, 모든 땅을 소유한다는 것과 그것이 진정 기업이라고 하는 것으로 내 인생을 주관할 수 있는 것으로써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생의 존재와 의미라고 함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물질적 기업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힘써 구해야 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로서 마땅한 모습입니다. 그렇게 말함은 하나님께서 물질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셨음에 대한 달란트 의식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 되신다는 것을 물질적 기업을 통해서도 나타내며 증거할 수 있는 것에서 실제적 중심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동산으로써 기업으로써 땅을 말하게 되어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우리들의 마음에 비교하여 말씀하시고 있다고 함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서 주목하며 한마디로 우리 인생의, 우리 성도의 ‘마음 지키기’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그러한 것에 답변하시는 주의 말씀하심임을 증거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3절까지의 말씀, 4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 그리고 19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3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한 옥합을 깨뜨린 여인에게 평안히 가라고 하심의 말씀에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서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고 열 두 제자들이 함께하며 은혜 받은 자들과 여러 여인들이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김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4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주께서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과 제자들의 비유의 뜻을 구함에 그 해석을 보이시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19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왔음에 대한 것을 혹이 고함에 따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 주의 모친과 주의 동생들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라고 하는 것에 대한 주의 판단과 그러한 것을 읽을 수 있는 은혜를 주의 성도들에게 허락하셔서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앞선 본문이 되어지는 누가복음 7장 36절 이하에서의 내용은 바리새인 시몬과 용서받은 여인의 대조적인 모습을 기억하면서 그러한 것이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그 마음의 중심들이 분별있게 되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심으로 받게 되어지며 우리 성도들이 용서받은 여인과 같은 중심을 가지게 되어지는 은혜라고 함이 좋은 땅에 백배의 결실하는 모습이라고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게 되어지는 것은 처음 1절에서 3절까지의 말씀은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심에 함께하는 주의 제자들은 그 용서받은 여인으로 판단되어지는 여인을 비롯하여 주의 말씀하심이 그들의 중심에 평안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결실되어지고 있습니다. 즉 그들의 행함이라는 것으로써의 결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을 밝히 말씀하시면서 주의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의 중심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서의 그 신앙의 확실성을 가지며 결실하게 되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19)
여호와 하나님 자존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자이심을 기억할 때에 우리에게 상대적으로도 절대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으며 또한 말씀하신다는 것을 받을 때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며 그 말씀이 지배하며 그 말씀을 따라 생활할 수 있는 열매가 맺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는 정황적으로 예수님을 초대한다고 하여도 영접한다는 형식만 갖출뿐 진정한 결실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는 씨뿌리는 비유에서 길 가에 바위에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는 강퍅함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로써 누가복음 7장 48절과 49절에서는 바리새인과 그와 함께하는 자들의 인식이 예수님이 죄사하심에 대한 것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 자신이시라는 것을 믿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받는 것과 같이 예수님을 초대하였으면서도 뿌리가 없음에 의심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그들의 결실적인 모습의 밭의 모습이 말라졌음에 대한 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8장 1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절대의 정당함을 생각할 때에 상대적인 측면에서 의심이라고 하는 것의 강요라고 하는 것의 실제를 부인하며 진정으로 믿음으로 스스로 행하는 것의 정당함을 따라서 주의 말씀하심을 받고자 하는 주의 말씀하심 안에서 판단되어지는 것의 실제적 정당을 따르고자 하는 그 스스로 행함의 정당함을 따르는 의지를 가질 수 있게 되어지는데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정당함을 찾는다는 점에서 착하다는 그러한 표현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낸 종들의 신실성을 하나님이 받으셨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착한 종의 인내는 인위적인 스스로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게 되어지는 그러한 스스로의 의지적 행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욥의 고통속에서도 말하고 있는 품군의 날(욥 7:1; 욥 14:6)과 같음에 대한 것을 둘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지킨다는 개념은 어떤 도덕적 의미에서의 순결을 말하기에 앞서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는 가운데서 진정한 실재와 실제라는 것을 찾아서 행하고자 하는 그러한 중심이 바로 마음을 지킨다는 표현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좋은 땅에 있게 되어지는 자들로서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좋은 땅과 같이 주의 말씀을 받으며 합당한 인내하며 결실하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귀한 종들이 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