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2월 13, 2004

흔들리는 갈대

2004년1월11일 소망교회 주일낮예배설교
눅7:18-35
흔들리는 갈대

인증하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은 상당한 공신력을 말하는 것으로 유념하고 주의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일이나 정체성에 있어서 그 정당성을 말해주는 것이 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증(人證)이라는 말은 법률적인 측면에서 ‘인적 증거’라는 말을 줄여 이르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고, 또 인증(引證)이라는 말은 인용하여 증거를 삼음을 말하며, 인증(認證)이라는 말은 어떠한 문서나 행위가 정당한 절차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공적 기관과 같은 합당한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곳에서 정당함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세 번째 의미의 인증(認證)이라는 말로써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의 말씀을 계시하심을 받으며 또한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8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24절에서 30절까지의 말씀 그리고 본문 31절에서 35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8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한 증거하심에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믿으면서도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묻고 있음을 봅니다. 그에 대하여서 예수께서는 구약에 예언하심의 말씀을 증거하시면서 예수님 자신을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음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24절에서 30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세례요한에 대하여서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질 수 있음에 대하여서 예언된 선지자임에 대한 증거를 하시고 선지자보다 나은 자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큼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31절에서 3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그 세례를 받지 않음에 대한 강퍅함이라고 하는 것을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어도 아무 반응이 없음에 대한 것으로 지적하시고 있고 세례요한과 그가 증거하는 예수님의 행하심에 대한 상대적 차이라고 함의 이유를 가지고 자신들을 정당화 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의롭다 옳다 여김에 그 지혜의 실존이 있음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바로 세례요한의 존재적 정당성과 그에 따른 그의 증거하는 자로서의 예수님의 정체성의 정당성이라고 함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예언되어진 가운데 메시아가 오셨음에 대한 그 증거와 그 증거되어진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예수님은 세리와 같은 죄인의 친구가 되어짐에 대한 것과 도덕적 판단이라고 함에 있어서 부정한 사람들과의 상관성을 말할 때에 진정 메시아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화려한 사람들 보다는 일반적인 사람들 더 나아가서 어쩜 초라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경향을 보고 그러한 부족하고 어려운 사람들이나 의지하는 예수님이라는 개념에서 자신들의 자존심이라고 하는 것이 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능력이나 위치를 고려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절대자가 판단한 것과 인증하게 되어지는 그 존재에 정당함을 부여하는 것에 있어서는 상대적이면서도 진정한 존재적 정당함을 가진 하나님으로부터의 인증되어진 자들로서의 인적 자원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한 사람이 때로는 실족할 수 있는 경향에서 고민하며 주께 그 뜻하심을 묻게 되어지는 자의 모습으로써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보이지만 예수님이 그가 예언된 선지자요 또한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함의 그 존재적 정당성을 부여하시는 즉 하나님 절대자로부터의 인증되어진 자로서의 인적 자원의 형태 부르신 제자의 모습임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세례요한보다 작은 사람이 없다는 표현을 하시는 것은 세례요한의 종된 자의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종과 아들을 생각할 때에는 그 구분선을 확실히 할수 있고 아들이 아무리 못났어도 종보다 못한 것이 아닌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세례요한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있어서는 당연히 하나님나라의 자녀된 자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지만 사역적인 측면에서의 종된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긴다는 사역적 차원에서 가장 낮은 자라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증이라고 하는 것이 상대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그 상대적 완벽성이라고 함을 추구하는 도덕주의자로서의 율법적 완성에서의 권위와 정당함을 따른 인증을 원하는 자들로서는 인정하고 싶은 것이 아닌 것이어서 배척하게 되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실존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상대적 판단이라고 함 그 자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에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의롭다고 함을 고백하게 되어지는 것임을 말하며 증거하는 자리에 서는 것임을 지적하심을 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인증되어지지 않은 것은 그만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합당한 권위라고 함에서 파생되어지는 정당함이라고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기본입니다. 쉽게 말해서 어떤 상표라고 함도 ‘유명상표’라고 하는 그것이 그만한 물건의 가치를 보증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지는 것과 비교할 수 있고 또한 어떤 공인이라고 할 때에 그만한 권세라고 함의 실제를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는 자들의 모습으로서의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 합당한 증거를 하는 자로서의 실제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들은 흔들리는 갈대처럼 의심이 때로는 들 수 있는 모습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의 택하심 안에서 그 은혜로 그 사역의 실제를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의 절대자로서의 구주로서의 선하심을 믿는 가운데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달려 주님 주시는 면류관을 받아쓰시며 그것으로 세세토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