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2월15일 소망교회 주일저녁예배설교
출7:1-25
지팡이와 안위
제가 알고 있는 어떤 분은 산에서 내려올 때에 마침 그곳에서 상주하시는 분들이 물품을 지게로 져서 나르는데 사용하시는 지팡이를 빌려서 의지하여서 내려올 때 참 든든했다는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등산을 좋아하시는 분이나 또는 산을 자주 다니시는 분들은 풀숲의 곤충이나 또는 해충들을 막기 위해서 막대기를 준비해서 지팡이로 사용할 겸 들고 다니는 것이 좋은 것임을 동의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목가적인 생활을 하는 지방에서는 양이나 특정 동물을 기름에 있어서 그들의 소유된 동물들을 인도하는데는 그 지팡이라고 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고 주인의 손에 들려진 그 지팡이라고 하는 것은 그 기르는 양들이나 동물들에게 있어서는 안심할 수 있는 표징과 같은 것으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에서도 앞서 지팡이를 가지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모세에 대한 증거와 같이 오늘 본문에서도 아론을 통한 지팡이로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고 있음에 대한 증거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 나타내시는 섭리와 그 증거를 받으며 또한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4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의 입술의 둔함에 대한 자기 겸손이라고 함을 받으시면서 그러한 실제적인 측면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신적인 권위로 말을 잘하는 아론의 동역을 말씀하시고 있고 또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실 것과 그러한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낼 것에 대한 것과 그 때에 여호와를 애굽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적에 대한 것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4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기 거절한다는 것과 그에 따라 애굽에 내리는 열가지 재앙의 첫 재앙으로 알려지는 나일강 하수의 물들이 피가 되어지는 이적을 베풀라고 말씀하심과 그것을 그대로 행하는 모세와 아론 그리고 주의 말씀대로 그러한 이적을 보면서도 애굽왕 바로의 마음이 강팍해짐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을 순종하는 모세와 아론이 그 섭리를 받들어 순종함에 있어서 그 주께서 허락하신 지팡이로 그 주의 섭리로서의 재앙을 나타내시도록 하심의 의미와 실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 같이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시편 23편의 말씀이 되어집니다.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1~6)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서 그러한 목자의 심정을 증거하셨던 것입니다.
아론의 지팡이로 뱀이 되게 하시고 그 애굽의 술사들이 만든 지팡이를 삼킨 것은 간교함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세상의 지혜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로서의 상대적 표현의 실제에 대립할 수 있는 것같이 나타난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정당함을 부여하시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혜라고 함이 세상의 지혜를 판단할 것이며 또한 세상의 지혜라고 함을 거룩하게 구별하여서 사용하시는 가운데서 메시아의 거룩하게 하심 하나님의 그리스도 예수님안에서의 의롭다 칭함을 받는 자들과 그 증거자들의 권세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젖줄이라고 까지 표현이 가능한 나일강 하수의 물을 피가 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신원해주시는 신실하신 분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서 애굽의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남자들을 모두 나일강에 빠져 죽게 함에 있어서 그 핏값을 찾으시는 분으로써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마치 가인과 아벨과 같이 가인이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자신의 상대적 정당함을 말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동생 아벨의 피가 소리지름에 대한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아벨이라고 하는 자의 이름의 뜻은 ‘헛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또는 허무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아벨의 죽음이라고 하는 것까지도 마음에 두셨고 그의 죽음에 대한 증거로서의 피 생명 값이 있음에 대한 가인에 대한 책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들 수 많은 아기들이 나일강에 던져져서 죽음을 당했지만 그러한 것들에 대하여서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의 생명의 값 핏값을 찾으시는 생명의 주로서 절대자로서의 신실함의 증거자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글한 것도 다 상대적인 이해해석이라는 입장으로써 일관할 수 있는 요소로 바로의 마음이 강팍해지는데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함에 대한 실제에 대한 분별이 없었던 것임을 지적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주의 성도들에 대한 존재에 대한 축복과 안위하심의 뜻하심이 목가적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것이 목가적인 종말론을 말하고 있는 이사야와 미가서 4장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되어지는 자들의 모습과 같은 것으로 이것은 종말의 때 즉 예수님의 자기 증거와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는 교회의 시대의 모습으로써의 실제적인 증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갈수록 바쁜 세상을 만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의 예언한 바와 같음을 또한 말하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너무 바빠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입니다. 이처럼 생존경쟁에 바쁜 세상 속에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 우리의 생존을 위해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우리 성도들의 머리에 바르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생존경쟁이라고 함의 피곤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을 때에 주 앞에서 바르게 행하고자 하는 가운데 우리의 존재의 정당함을 부여해주시는 하나님 주의 말씀하심의 지팡이가 성도된 나를 안위하심에 대한 기쁨과 감사로 주의 복음을 위해 산을 넘는 자들로서의 중심을 가지며 그 산을 넘는 자들의 발걸음을 귀히 보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종들이 되시는 귀한 은혜가 또한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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