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1월16일 소망교회 금요철야예배설교
욥10:1-22
욥이 구하는 평안의 기도
어떤 일에 있어서나 무엇이 확실한 것인가 그러한 것에 확실성을 가지지 못하는 가운데서는 상당한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고 많은 어려움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상식이하의 일들이 정당한 것과 같이 왜곡되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인륜이라고 하는 것의 기본적인 상식이라고 함의 인식들이라고 함도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말하면서 성적인 타락이라든지 그러한 악을 범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음란하고 악한 세대의 기본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악한 일과 성도를 시험하는 일들도 마찬가지로 부당한 대우와 그러한 가운데서의 정죄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때에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힘들게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성도들은 어떤 중심으로 행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서 마음을 두며 주의 증거를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4절에서 22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욥 자신이 살기 곤비한 가운데서 자신의 원통함이라고 하는 것을 발설하고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는 것의 중심적 표현이면서도 자신의 절제의 은혜의 자리에 설 수 있는 모습을 취하고 있음을 봅니다. 즉 사람이 보는 것과 달리 하나님의 선하심의 뜻하심이 공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어찌 모함하는 자들의 말이라고 함이 사실로써 됨에 대한 것을 허락하시는지 알기를 구하면서 욥 그 자신이 알지 못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뜻이 주께 있은 줄을 안다고 함에 대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4절에서 22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앞서 고백한 욥 자신이 고난당하여서 살기 곤비한 가운데서도 이러한 것의 뜻하심이 주께 있음이라고 함의 내용이 고백되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고 의로울 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한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고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뜻하심 안에서 열매 맺기를 기뻐하심을 마음에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곤비한 때가 지날 수 있도록 돌아오지 못할 땅으로 가기 전에 평안하게 하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욥이 참으로 살기 곤비한 가운데서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중심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자리에 서기를 힘쓰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시 3:3)
다윗이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기록한 내용으로써 참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자로써 죄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자로서의 자신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자신이라고 함에 대한 고백이 있는 것과 같이 욥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중심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가운데서 그 주시는 평안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적 정당함이라고 함이 세워져야 할 것이라고 함을 마음에 두며 머리를 숙여 경배하는 자리에 서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 교회에서 주의 택한 백성들로서의 이스라엘이 모압산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이끌어내셨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이 예식이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에 바르게 가르치게 되고 머리를 숙여 경배함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출 12:27)
이처럼 욥의 모습도 하나님의 절대자로서의 절대 선하심에 따른 상대적 표현이라고 함의 신실성을 믿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하심 안에서 자신의 곤고함이라고 하는 것도 마음에 담을 수 있기를 원하는 그러한 자로서의 주의 몸된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기를 원하는 자들로서의 주의 몸된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의 행함에서의 곤고함이라고 하는 것이 주의 뜻하심 안에서 상대적으로 왜곡되어진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선하심의 뜻하심이 주께 있음을 기억하고 주 안에서 평안을 구하며 주께서 머리를 들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 옳은 것임을 기억하도록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모세를 통하여서 나타나는 광야세대의 믿음의 후손들에게 그들이 생활하는 것과 그 예식이 어떤 뜻인지 가르쳐주는 가운데서 하나님께 머리 숙여 경배하였던 것과 같이 우리 성도들도 임의대로 우리의 입장을 변호하기 보다는 주의 뜻하심 안에서 신실하고 그러한 가운데서 주님의 머리를 들게 하심의 은혜를 구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가운데 하나님의 자랑하시는 욥과 같은 자리에 서는 은혜의 자리에 서도록 함이 옳은 것입니다.
살기 곤비한 때에 자신의 입장이라고 함을 말해야 하는 그러한 곤고함 속에서도 다윗과 같이 머리를 드시는 여호와의 손길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적 판단을 하는 가운데서 진정한 실제를 바라보며 우리의 삶에 있어서 주의 평안 가운데 인내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 앞에서 충성되이 일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뜻하심 안에서 주의 구원을 보이시며 하나님이 받으실 그 합당한 영광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곤비함으로 지칠 때가 있다고 하여도 주께로부터 평안의 은혜를 구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달려가며 주님의 영광의 나라를 위해 고난이라고 함을 내게 채울 수 있는 주의 받으신 바가 되어지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믿음의 후손된 모든 이들에게와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