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3월 29, 2004

나를 보호하시던 날에

2004년3월26일 소망교회 금요철야예배설교
욥29:1-25
나를 보호하시던 날에

사람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지거나 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지면 지난날의 좋은 회상에 따른 기억들을 더듬으면서 위로받고 싶은 자리에 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마디로 ‘옛날에는 참 좋았는데..’와 같은 진술적 표현이 그러한 것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러한 지난날의 회상이라고 하는 것을 한다고 사람들이 그러한 심리적 압박이나 위축에서 안주하는 것만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러한 가운데서 앞으로의 계획들을 모색해내는 그러한 진취적 발판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양면을 생각할 수 있는 지난날의 회상에 대하여서 우리 신앙인의 모습에서는 어떤 한계적인 절제와 분별이 필요한 것인가 그것에 대하여서 주목하도록 하는 말씀을 받게 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1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8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오늘 본문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특히 2절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욥의 장막에 있던 때를 회상하면서 말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권위에 따른 그의 위엄과 그 증거라고 함에 상대적인 연륜 있는 가운데서의 권위자들로서의 연로한 분들도 귀인들도 말을 하기를 주저하였던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1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이러한 욥의 권위와 증거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권위로 직접적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욥의 선행과 바르게 함에 대한 것으로도 부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 대한 것을, 그가 그와 같이 공론되어지는 것을 들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18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욥이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에서 스스로 행할 수 있는 판단으로써 언약이 그와 함께 함에 따라서 그 언약의 말씀의 증거를 사람들이 사모하였음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고 그의 증거에 대하여서 그의 얼굴을 무색하게 하지 않았음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욥의 회상이라고 하는 것이 심리적 판단에서 긍정적인 판단이 되어지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모습이 아니라는 점도 마음에 두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2절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그는 말하기를 ‘내가 이전 달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날에 지내던 것같이 되었으면-’이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 한마디는 전반적인 욥의 두 번째 비사의 중심적이며 실제적인 판단을 받는 부분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욥 자신을 보호사시던 날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불연속적인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어지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신실함을 따르며 그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의 정당함을 찾기를 구하던 욥의 순전한 모습에서 떠난 모습으로 일시적인 시험에 들은 모습이라고 함을 말하게 됩니다.

이러한 언급이 31장까지 이어지고 32장에서는 성경에서 욥이 자신이 스스로 의롭게 여김에 대하여서 변론의 형식적인 상대적인 실제의 완성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는데 욥의 넘어짐과 변론자들의 입이 다물어 지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의 형태적인 현실적인 실제, 객관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악된 세상은 그러한 것을 집요하게 말하고 강요하는 그러한 정황과 소리들에서 성도들의 순전함을 잃게 하는 자리에 유도하며 유혹하며 시험에 들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오늘 본문의 욥의 모습에서 읽게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참으로 우리 하나님의 절대 자기 정당함 속에서 우리를 향하신 그 사랑은 절대의 신실함과 그 사랑으로 상대평가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마음에 담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연약해서 그러한 자리에 들 수도 있지만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서와 같이 우리를 그러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시는 날이 따로 있고 나를 보호하시지 않는 날이 따로 있다는 식의 발상은 옳은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진정으로 성도된 우리, 나를 보호하시는 날에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절대 신실하심은 우리의 정황적 판단에서 비롯되어지는 실제상황으로 판단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며 하나님의 자랑이 되시는 그러한 성도들의 반열 속에 서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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