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3월 25, 2004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2004년3월24일 소망교회 수요예배설교
행6:1-15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사람이 살아가는 가운데 있어서, 여러 가지 상황(狀況) 또는 정황(情況)이라고 하는 환경을 만나게 되어지고 그러한 가운데서의 삶을 경영하는 가운데서 적응의 문제라고 함을 말하게 되어지는데 그러한 적응을 위한 노력으로 가지는 중심이 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달라질 수 있는 중심이라고 하는 것의 표현이 사람의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눈을 비롯하여 얼굴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한 것은 그 사람의 얼굴의 다양성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처세적인 측면에서 지혜이면서도 도덕적 비난을 초래할 때에는 이중인격자로서 판단받는 경우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들이 가능한 그러한 사람의 중심의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의 얼굴인지 가장한 아름다움의 얼굴인지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삶에 대한 지혜가 되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성도로서의 우리의 중심의 표현으로서의 얼굴이 되어질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중심을 말하는 것과 동일시되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8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사도들의 증거와 함께 제자들이 많아져서 구제하는 일로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원망하게 됨에 따라서 직분을 세우도록 하여서 일곱 집사를 세움과 사도들은 전적으로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것을 전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서 사도들이 안수하여서 집사를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여서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들도 복종함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8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집사로 안수받은 스데반의 증거로 인하여서 많은 변론이 나타나고 있는데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에 따라서 사람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고 거짓 증인들을 세우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서 피상적인 증거로 인해 고소하고 있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공회 사람들이 스데반을 주목하니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음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교회의 질서라고 하는 것이 구제라는 필요에 따라서 새워지고 그러한 직분의 차이와 실제를 구별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구분적 직분의 실제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별되어진 가운데서 사역적인 증거의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받으심 안에서의 귀함의 실재를 주목하도록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에 대하여서는 에베소서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지고 있으면서도 교회가 공적으로 세워지고 있는 이 때에 누가에 따른 기록인 본문에서는 필요에 따라 구별되어진 구분적 직분임을 말하게 됩니다.

그렇게 말함은 상대적 차이라는 개념에서 별개의 개념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스데반이 주의 말씀을 증거하고 또한 증거하는 것을 봅니다. 물론 이러한 것은 교회의 질서적인 차원의 정당함을 부인하고 아무나 말씀의 강도권이 있는 것과 같이 생각하는 것과 질서를 따라서 강도권을 가진 자의 입장을 부인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의 세상에 빛이 되어지고 소금이 되어지는 자들로서의 주의 증인들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의 스데반의 증거가 언급되어지는 것입니다.

더욱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음을 주목하는데 이는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이라고 함에서 보게 되어지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성령의 인치심이라고 하는 즉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하는 정당함이 그에게 있게 되어지는데 이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입은 자로서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증거자로서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가운데서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받고 그가 그곳을 떠날 때에 하나님의 얼굴 앞을 지나는 것이 기록되어짐을 보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말이 바로 브니엘이라는 뜻으로 그 지명의 이름이 되어지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스데반의 개인적인 경건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게 되어지는 우리 성도들의 모든 모습이 되어지며 상대적일뿐인 정황적 미소를 가지고 꾸며내는 외식에서의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하는 가장된 천사의 얼굴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존재적 정당함을 얻게 되어지는 자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리에 서게 되어지는 자들이 천사의 얼굴로서의 진정한 중심을 나타내며 주의 증거를 온전히 신실히 나타내는 자로서의 자리에 서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경에서는 고운 것도 헛되다고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한 일반적인 정당함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는 그러한 아름다움의 실제적 정당함이 일반적인 것에 머물게 되어지는 것으로 헛되다는 것을 말하며 오히려 그 자신의 중심과 의지와 상관없이 가장되어진 얼굴이며 실체를 말할 수 없는 모습으로 헛됨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들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행하는 자리에 서게 되어지며 그러한 가운데서의 진정한 주의 보내신 자들로서의 중심과 그 표현의 하나로서 천사의 얼굴과 같은 중심을 가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실제를 말하지 못하는 상대적인 아름다움의 얼굴로 가장하는 자리에 서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의 내 존재의 정당함을 찾는 자들로서 스데반과 같이 그의 증거가 사도 바울을 세움에 큰 증거자로 나타난 것과 같이 하나님의 귀한 증거자들이 되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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