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5월 31, 2004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2004년5월28일 소망교회 금요철야예배설교
욥42:1-17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사람들은 말하기를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부모의 심정에 담아두신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읽기를 잊어버린 모습을 지적해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자식사랑이라고 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지은 인생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은 창조주만이 말씀하실 수 있는 중심의 증거를 받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이 자녀들을 바라볼 때에 참 그만큼 소위 ‘익어가는 인생’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며 배우며.. 그러한 자녀들이 잠시 어디 나갔다가 다시 품에 안겼을 때에 그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정적인 의미에서 말하지만 실제적인 표현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할 정도의 사실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한 중심으로 하나님의 구속하심의 그 뜻하심의 깊이를 알게 하시는 마지막 본문인 욥기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7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 그리고 본문 10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욥의 중심에서부터의 진정한 회개가 기록되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7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여호와께서 욥에게 말씀을 다하신 후에 엘리바스를 비롯한 두 친구에게 책망하심에 대한 것과 욥에게 제물을 가지고 가서 욥이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도록 하라고 하심과 그들이 순종함과 하나님이 욥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10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앞선 세 친구들의 조문이 아닌 다른 이들의 조문과 위로가 이어졌고, 하나님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심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 아들 일곱과 아름다운 딸들 셋을 주셨음과 욥이 그의 나이 다하도록 향수하였음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전반적인 측면에서 주목되어지는 것은 맥락적으로 볼 때에는 욥의 회개라고 하는 것과 그에 따른 모년 즉 말년에 복을 누림에 대한 것이 주목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년’은 ‘아하리트’(tyrIj}a')라는 말로써 종말(eschatology)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의 특징적인 것은 개인 종말론이라고 하는 것이 전반적인 또는 일반종말론적인 형태를 띄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한 사람의 한 족장의 미래를 통해 그 후손적 개념이라고 하는 자들의 정해진 형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형태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구별되어지는 가운데서의 진정한 실제적 의미를 가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좀더 주목되어지는 것은 이 조문객들로 온 엘리바스를 비롯한 두 친구들을 위해 욥이 번제를 드리도록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과 그러한 일이 있은 후에 오늘 본문에서는 욥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셨음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욥이 메시아 안에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자들로서의 증거적 의미를 가지게 되어지는 것으로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을 증거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욥도 예표적 실제이면서도 실제로 그 구성원이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구태여 그 세 친구들이 정당하지 못한 합리성으로 욥을 넘어지게 하는 가운데서 욥에게 권한 적 종속적 자리에 섬이라고 하는 것을 공식화시키심을 보는데 이는 이들이 욥의 종과 같은 자리에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노아 때에 셈과 야벳에게 주어지는 언약의 실체는 셈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야벳족속이 창대하여 셈족의 장막에 거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언에서는 함은 저주를 받아 형제들의 종이 되기를 구하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처럼 혈통적으로는 함의 족속적 의미로 보기 어려운 에서의 족속으로 이루어진 세 친구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언약하심의 새 질서 가운데서 함의 족속의 자리에 서게 되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시며 함의 족속으로써 애굽에 속한 자들의 악함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자손들로서 셈의 족속 아브라함의 자손들로 출애굽하는 가운데서의 자기 정체성의 확신을 가지게 되어지는 자리에 서게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메시아 안에서 새로운 질서로써의 하나님나라의 법이 이미 예정되어진 가운데서 시행되어지고 있음에 대한 예표적인 실제로서 실제적 증거가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합당한 조문객들로부터 그 위로를 받게 하시고 금조각과 금고리 등을 받게 하심은 그러한 출애굽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사람들로부터 취한 물품에 비교되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자녀들을 낳음에 있어서도 믿음의 기업들의 아름다움과 그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의 실재를 예표하는 실제적인 그들의 아들이었음과 그 영광이라고 함 남자의 영광이 되어질 수 있는 그 딸들의 모습은 주의 몸된 교회의 영광의 온전함을 나타내는 예표적 실제의 증거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출애굽과 메시아 예수님이 자신과 관련되어진 것임에 대한 증거를 우리 성도들이 또한 증거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 있음을 주목하며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택한 백성들이 마치 숲에서 길을 잃은 자들이 부모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지는 자의 모습으로써의 욥의 존재적 증거에서 나타나고 있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스 땅의 욥’ 그 뜻은 우스 ‘숲이 우거진(Wooded)’이란 뜻이고 욥이란 뜻은 ‘미움 받는(hated)’, ‘원하는’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러한 중심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이 없는 길에서 그 실제를 알지 못하고 숲이 우거진 곳에서 길을 잃고 그 곳 족속의 시민이 아니므로 미움을 받는 자의 모습임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출애굽과 같이 하나님의 언약이 없는 곳에서 나오게 되어지는 그 하나님의 실재를 의지하여서 실제를 분별하는 정당한 합리적 지식이 있음으로 지식 없어 망하는 자들의 자리에 서지 않게 되어질 자들의 모습을 말씀하시고 있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합리적인 것만을 생각해서 하나님으로부터의 합당함을 입은 것들을 불의하다고하는 것에 동조하여서 하나님이 없는 그러한 짐승과 같은 자리에 서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지혜를 받은 자들로서 주님의 말씀과 같이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한 자리에 서시는 가운데 참으로 하나님의 자랑이 되시는 귀한 자들로서, 욥과 같이 하나님의 기뻐 받으신 바가 되어지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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