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5월2일 소망교회 어린이주일낮예배설교
잠22:1-6
마땅한 것을 가르치라
오늘은 교회의 절기를 따라서 어린이주일예배로 하나님께 경배드립니다. 우리 기성세대의 마음속에는 그래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것에 대한 회의적인 측면에서 자녀에게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고 또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우리가 회개 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러한 영향력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지며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지 않은 동물들에게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의 동식물을 만드셨음에 대한 것을 나타내는 것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내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짐의 사실을 말하게 되어지는데 그러면 그러한 사랑함에 대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하심과 그 지혜로 양육함이라고 하는 것은 귀결적으로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오늘 본문 하나님의 지혜의 실제를 받게 되어진 자로서 솔로몬이 지은 잠언의 말씀을 주목하며 증거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2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3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2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사람이 재물보다도 명예를 선택할 것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고 빈부가 섞여 살고 있는데 이를 지으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3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슬기로움과 겸손이 여호와를 경외함에 대한 보응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패역한 자의 길은 올무가 있음과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한다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고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주목하면서 무엇이 마땅한 것인가 하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상대적인 사회에서 모든 것이 다 상대적이라고 하면 생각하기 나름인데, 마땅한 것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하는 생각을 함에 따른 판단을 하게 되어지는 일반적인 의식과 판단을 따름이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도 그 많다는 개념이 진정 마땅함을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결국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것에 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되고 주장하게 될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패역한 자들의 모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패역하다는 것은 그 실제를 모르고 행하는 자의 모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즉 무엇이 사실인지 말할 수 없으니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하고 인륜도 저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행함의 경건도 자신의 유익을 말하는 것같이 말하는 세대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대에 패역함에서 벗어 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어린 후손 다음 세대에 대한 사랑이 되어진다는 것을 마음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 실제인가 그것을 가르칠 수 있어야 그 인륜적인 것과 그것의 기본이 되어지는 신앙의 경건이라고 함에 대하여서 순종을 배우고 또한 참으로 바른 세대로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실제는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자가 자기의 절대 정당함으로 상대적으로도 절대적인 말씀을 하실 수 있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받을 수 있는 가운데서 그 실제를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땅함의 실제, 그 사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참된 신입니다. 그러한 자존하시는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이십니다. 자기의 존재마저도 스스로 간수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상대적으로 능력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가짜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것은 어리석은 형상 우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존하시는 하나님께서 아이에게 마땅히 가르칠 것을 가르치라고 하시는 것은 참된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심의 실제를 가르치고 그 구원하심 안에서 세상을 실제적으로 살아가게 하셨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합당하며 마땅한 것임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그의 백성되었던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셔서 40년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태어난 자들 애굽을 나올 때 그 가르침을 직접 받지 못하였던 자들을 위해 애굽을 나오면서 재정한 유월절 의식에 대하여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증거임을 가르칠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머리 숙여 경배하였음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음을 기억합니다.(출 12:26~27)
이것은 기성세대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반문적인 개념의 질문에서 그 실제로서의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친 것을 통해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후손들이 그것을 떠나지 않았으며 그러한 가운데서 오실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실제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날은 무엇이 실제인지 상대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그러한 불가지적 입장 때문에 일반적인 상식에서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으로써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도 주관적으로 상황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동학대와 분별없는 자녀사랑으로 무엇이 실제인지를 배우지 못한 가운데서 패역한 세대를 양산하는 악함을 말할 수도 있는 때입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보호받아야 하며 마땅히 귀하게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그 정당함을 따라서 우리 성도들도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이 실제인지 모르고 있는 패역한 세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 절대자가 상대적으로도 말씀하심에 대한 상대적인 실제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 이러한 마땅한 것을 배우도록 가르침이 옳은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계획을 담은 씨앗과도 같은 우리의 후손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하심이 예비되어질 수 있도록 힘써 우리의 후손들을 참되게 사랑하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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