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5월26일 소망교회 수요예배설교
행11:1-30
그리스도인
질서를 나타내는 또한 그것을 위한 것으로써 법에 대한 것을 잘 알지 못함에 있어서는 상당한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연법과 같은 인륜적 개념에서 이해되어지는 불문법적인 측면을 말하거나 인륜적 개념의 법적 개념도 있지만 그러한 것이 성문화되어진 가운데서 일상적인 유익을 위한 규제라고 하는 것이 있게 되어지는데 이러한 것을 잘 알아두지 않는다면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하나님나라의 법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가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을 말씀드리게 되어지는데 이는 주의 몸된 교회에 있어서 기본적인 거룩함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의 법적인 근거에서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을 받게 되어짐을 주목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9절에서 26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27절에서 30절까지의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단적으로 베드로의 긴 변명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때 당시에 있어왔던 유대인들의 관례라는 그러한 측면의 법적인 것의 위반적인 논란이 있어 보이는 새로운 법적 질서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서의 기도 중에 있게 되어지는 그 환상 중에 하나님이 깨끗케 하심을 더럽다 하지 말라고 하심에 대한 말씀하심이 그 성도들의 교제라고 하는 것이 유대적인 측면의 법적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점의 실제적 의식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9절에서 2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때에 스데반으로 인한 환란으로 흩어진 자들이 유대인에게 주의 말씀하심을 전하고 있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들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로 돌아옴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권위자라는 존재적 증거자로서 증거되어지는 바나바가 사도 바울을 안디옥에 데려와서 일년가 가르침과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음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27절에서 30절까지의 말씀에서는 구약적 개념에서 있었던 선지자들의 예언과 그 예언의 내용으로써 흉년을 예고하고 그것이 이루어짐에 있어서 바나바와 사울이 유대교회를 돕는 자리에 파송되어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베드로의 긴 변론으로써 나타나고 있는 주의 계시로써 주어진 환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설명과 그 증거를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법적 실제와 그 실제적 상황의 이루어짐과 그것이 베드로에게서 비롯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도들의 여러 가지 삶에서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 가정에 주의 성령이 임하시는 구약적 증표적 증거를 앞서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에 대한 증거로서의 실제적 성도의 교제를 말씀하심이 베드로의 기도 중에 보여주신 환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이후에도 계속 몇 번 더 주목하도록 기록되어지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법적 실제라고 하는 것 하나님 나라의 법은 인간의 족속적 개념을 통해 나타나고 있었지만 그것에 본래적으로 종속적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족속적인 실존의 정당함을 부여하는 언약적 주체로서 나타나고 예언되어져 왔음에 대한 것을 알게 하시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앞서 말씀하심에 대한 것을 위해 한 족속으로써 이스라엘을 주의 기뻐하시는 가운데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이러한 개인적 개체적 족속의 종말론이라고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반적인 종말론적 실재를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심의 것은 이것입니다.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행 10:14)
이러한 깨끗케 하심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즉 우리의 허물을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서 살아나심이라고 함을 기억할 때에 우리의 존재의 깨끗함과 의롭다 하심의 실존적 재가를 받은 자들이 그의 이름으로 칭함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의 부르심에서 주의 말씀을 받게 되어지는 자에게서 그 그리스도인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성도들이 받게 하셨는데 이는 안디옥이라는 말이 ‘병거’라는 말의 뜻이 있는 것과 같이 주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으며 그 존재의 거룩함과 정체성을 말하는 자들이 또한 주의 증거자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살게 되어지며 그러한 자리로 성도들이 교제를 하게 되어진다는 점을 마음에 두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의 간다게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서 그 마차로 나아감이라고 하는 것과 그곳에 올라서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쳐 알게 하고 믿게 하였던 그러한 모습의 증거적 의미가 바로 오늘 본문에서 안디옥에서의 그리스도인으로 증거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구속하심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어지는 성도들의 모임과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입게 하시는 새로운 하나님나라의 법이 선포되어지고 있고 받고 행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시며 하나님의 아들 이신 예수그리스도 주님의 뜻하심이 이미 예정되어진 가운데서 이 때를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메시야이시다 예수께서 기름부으심을 받으신 자이시며 기름 부어 성별케 하시는 가운데서의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입는 가운데서의 자신의 교회를 세우심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예고되어진 가운데서의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면서도 그리스도의 구별적 질서라는 것의 온전히 나타남이라고 하는 것에서는 전혀 새로운 법적 질서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도 주의 말씀하심에서 신비적 요소라고 해서 베드로와 같은 체험적인 것이 있으면 형태적으로 동일하게 보인다는 개념만으로 새로운 질서를 말하는 것같이 말한다면 이미 하나님의 말씀하심의 재가적인 차원의 완성이라고 함의 정당함을 입지못하는 가운데서의 정체성 없는 헛된 신비주의가 될 것입니다.
새로운 법적 질서를 말씀하시는 특별영감으로써의 베드로의 환상은 일반적인 재가로 인하여서 얻게 되어지는 오늘날 일반성도들의 영적 감동과는 분명한 실제적 구분이 있다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법적질서를 말씀하심의 계시가 온전히 나타났는데 또 다른 사람을 통한 계시적 모습으로 새로운 질서를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흉내 내는 자의 모습으로 정체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법적 질서는 그리스도의 구별하심의 성별적인 정체성에서 얻게 되어진다는 믿음의 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한시적으로 예언해왔던 유대인들도 예수님의 새로운 법적 질서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우리의 허물을 위하여 죽음에 내어주신 것과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심(롬 4:25)에 대한 것을 믿고 그것에서 우리의 존재와 삶의 정당함을 찾아내도록 하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며 또한 안디옥에서 그러한 이름이 주어진 것은 종들로서의 아름다운 고백이 있게 하심인데 그것은 주의 병거에 올라온 자들 즉 믿음의 선한 싸움에 협력하고 힘쓰는 종들의 모습 속에서 이루실 하나님 앞에서의 종들의 사역적인 중심과 고백이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과 같이 주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예수께서 구주이심을 믿는 자들이 참으로 그러한 가르침에 자기 정체성을 찾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권의자로서의 바나바와 같이 그리고 이방의 그릇으로써의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께서 귀히 쓰심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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