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5월21일 소망교회 금요철야예배설교
욥40:1-24
하마를 볼지어다
동양 고례(古例)로 보면, 사람의 몸의 형태를 살펴서 사람의 체질을 구분하고 그러한 가운데서 그 사람에게 맞는 처방을 할 수 있는 그러한 경향이 있어왔고 요즘도 한방에서는 그러한 전통적인 방법으로 치료하고 처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체형의 사람은 열이 많은 사람이다 또는 어떤 사람의 체형은 어떻다 그래서 식이요법을 통한 건강과 치료를 겸할 수 있다는 그러한 의료적 접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처방적인 근거가 있는 사람의 형태를 보고 판단함이 있지만 일반적인 상식에서는 그러한 사람의 형태를 보고 판단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견해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에 남자인 경우 배가 나온 사람의 모습은 사람들이 보기에 ‘후덕하다’, ‘인심이 좋을 것 같다’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허기진 사람이라고 할 때에 그러한 입장에서 남에게 베푸는 그러한 온정을 말하기 어렵고 그러한 측면에서는 인자함이라는 평판을 받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소위 배가 나온 사람이라면 그만큼의 착복이라는 평판과 함께 그가 베풀 때에는 인자함이라는 평판을 받을 수 있고 그 능력이 되어진다는 그러한 인식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사실 비만적인 요소와 또한 현대인에게 있어서의 기피적인 입장이라고 함을 기억할 때에 시대적으로 맞지 않은 발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측면의, 비상식적인 사람의 외모판단에 대한, 말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사람의 모습을 보고 인생을 판단하는 것과 같이 오늘 본문에서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고 그 욥 자신의 완악함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도록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좀더 주목하며 주의 뜻하심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5절에서 24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욥에게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는 말씀과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는 대답하라고 하심에 욥이 자신은 미천하여 입을 가릴 뿐이라고 함을 말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자기가 한두 번 말하였은즉 대답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있음과 그에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은 욥에 대한 책망을 더하시고 있고 있음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5절에서 24절까지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제 ‘하마’를 주목하라고 하시면서 그 특징들에 대한 것을 비교하시면서 책망하시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문맥적 중요성과 그 본문이해라고 하는 것이 유의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어질 수 있음을 말하게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전반적인 흐름에서 오해되어질 수 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욥의 대답지 않겠다고 한 말은 강변의 뜻으로 의도적인 주의 말씀하심에 대한 자기 합리성의 외적인 대답이 되어지는 것으로 회개에 이르고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즉 중심은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서 예의상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써 실제적으로는 자신의 강변된 입장을 못 버리겠다고 함을 말하고 있는 어리석음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게 되어지는 것은 이미 회개한 자에게 다시 비유적 책망의 말씀을 하신다는 것은 의미없는 것이 되며 또한 욥기서 38장 1절과 3절에서 말씀하심이 오늘 본문에서도 6절과 7절에서 동일하게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폭풍 중에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과 욥에게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네가 내게 대답할지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주목되어지는 하마의 특성이 그 힘이 허리를 비롯한 힘줄에 있음에 대한 것이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하마의 모습임을 비교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욥 40:16)
욥에 대한 하나님의 일인칭적인 책망은 38절에서 39절까지의 말씀과 40절에서 41절까지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내용적 전계는 놀랍게도 성경의 순서적 의미를 따라서 말씀하시고 있고 그러한 가운데 다니엘서의 예언이 나타나고 있는 다니엘서 4장의 내용인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짐승과 같이 처함에 대한 것을 욥에게 적용되어진 것으로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은 재판관이시다 라는 그 하나님의 판단하심의 주재권의 정당함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하늘에서 지혜가 오지 않는 가운데 짐승과 같이 처하게 되어지는 인간의 형상적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즉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으로써의 짐승과 같이 풀을 먹는 그 때의 모습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지 않고 자기 연민(憐愍)에서 자기 판단의 부당함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는 욥의 모습이 마치 들짐승과 같이 있게 되어지는 자로서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하심을 부인하지 못하게 되어짐에 따라서 채식동물인 하마의 위용이라고 함을 보고 깨닫도록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욥기서 39장에서는 독수리 비유에 있어서 정점의 말씀을 하시고 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한 가운데서도 욥 자신의 짐승처럼 하나님 앞에서 그 힘의 기원과 기력의 정당함을 인정하지 못한 가운데서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아님에 대한 심판의 판단말씀을 받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의 의미적 측면에서, 좀더 주목해보면 욥이 하마에 비교되어지는 것은 그 자존적 힘이라고 하는 자기변명의 기본이 하마와 같이 허리와 배에 있다고 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지 못한 존재로서의 동물적 개념에서의 힘 있음이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식 없어 망하는 자의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하심은 상대적인 합리성으로 다 합리화하는 그 총족성을 말하는 것으로써의 그것이 아니며 상대적 우위에서의 그 실제를 말하는 것에 비로소 기초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욥은 상대적인 측면에서 그 함께 했던 세친구들의 합리성을 꺾어서 힐문하지 못하는 자리에 선다는 것으로 오히려 그들에게 자신도 상대적 합리성이라는 개념에서 동의함으로 실제를 말하지 못하고 지게 된 자의 모습이기 때문에 자신은 합리적으로 그 승리의 입장에서 옳다고 하는 정당함을 찾지만 그것은 하마와 같은 합리성의 충족성이라는 개념으로 말할 수 있는 많은 말들의 이유라는 것을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절대자의 자존적 정당함을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심이 욥의 힘의 근원으로 비교되어지는 하마의 허리와 배의 힘줄을 말하게 되어지는데 하나님은 그러한 힘의 근원이 굳이 비교되어진다면 앞쪽이 있는 팔이라는 개념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점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문에서 흑암 중에 말씀하신다는 것과 같이 합리성의 연속성이라고 하는 것이 의미를 상실한다는 점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자의 자존적 정당함에서 상대적 정당함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개념의 합리성의 충족성 즉 하마와 같은 힘이라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욥의 합리성의 문제점이라고 하는 것을 지적하시는 말씀으로 ‘엘리후’를 통하여 이미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네가 이것을 합리하게 여기느냐 네 생각에 네가 하나님보다 의롭다 하여 이르기를 유익이 무엇인고 범죄한 것보다 내게 이익이 무엇인고 하는구나”(욥 35:2~3)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판단하심은 상대적으로 나타내심에 있어서도 자존의 절대 정당함을 가지신 가운데서 상대적인 것을 취하여 말씀하심에 그 정당함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의 형태적인 것만 생각하여서 상대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절대 판단하심을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많은 합리성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려고 하는 죄에 빠진 자기 연민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하마’라는 동물은 문자적인 개념에서만 본다면 ‘공룡’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게 되어지며 지질학적인 개념과 또한 그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그러한 과학적 시도로 그 시대를 말하겠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언어의 해석적 가능성에 실제를 말하지 못하는 과학적 연대에 대한 무분별한 적용을 말하는 것보다는 오늘 개역성경 본문에서 주목하는 하마와 같이 그 힘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의 차별성과 그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얻지 못한 가운데서의 모습들이 합리성만 추구하고 있는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서 판단 받게 되어질 것이라고 함을 말씀하심이 본문에서 실제적인 합당함의 증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합리적인 것만 따르는 가운데 시험에 들지 않고 그러한 시험에 들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러한 책망을 받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랑이 되시는 욥과 같은 귀한 자리에 서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Preacher's main weblog
http://sophiadei.blogsp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