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6월 28, 2004

다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2004년 6월27일 소망교회 주일저녁예배설교
출23:1-19
다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지금의 시대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로 묘사되어질 수 있다고 함에 열려진 것을 인정하면서도 한 묘사적인 표현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정보화 시대'라는 것입니다. 정보가 수집되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당히 곤욕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언급한다면 그러한 정보라고 함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그 정보가 사실인지 여부와 그것을 취하여서 합목적적인 용도로써 사용함에 타당한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보의 부실화로 현실적인 측면에서 도모하여야 할 필요한 많은 것을 잃게 되어지는 경우도 있고,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사실로서 성립되어질 수 있는 것이냐는 것도 또한 고려해야 할 문제가 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것은 그것을 의지하는 것이나 그것을 사용하거나 말하는 자도 허망한 것이 되어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 것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에 대하여서 구체적으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심의 뜻하심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0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 그리고 본문 14절에서 19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본문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에서는 허망한 풍설을 말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말씀을 비롯하여서 허망한 풍설이라고 함을 만들 수 있는 그러한 여건들이라고 함을 따르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하여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0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에서는 파종을 비롯하여서 땅을 쉬게 하는 것과 같은 칠일과 칠년과 같은 언급을 말씀하시면서 모든 일을 삼가고 지킬 것을 말씀하시면서 또한 다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 것에 대한 말씀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14절에서 19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무교절을 의미하는 것과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심과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심과 같이 세 절기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일년에 세차례 여호와 앞에 보일 것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말씀에서는 긍휼에 대한 것임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심의 말씀하심이 덧붙여지고 있음을 주목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허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그것을 잊지 않도록 하심의 말씀하심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의 문맥적인 것을 먼저 살펴보면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후에 백성들에게 세우는 율례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십계명에 대한 것이 그들의 현실적인 실제적 삶에 적용되어지는 것임을 말씀하시기 위하여서 그 구체적인 언급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으로써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이라고 하는 사실과 우리 인생이 범죄하여서 땅을 갈아야 하는 것과 그 고통이라고 함이 종노릇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함을 말씀하시는 그러한 율례들을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는 그 소유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것도 말씀하심을 읽게 하는 그러한 율례를 주셔서 마음에 새기는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는 허망한 것이라고 함을 전하지 않도록 하심의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허망하다고 하는 것은 그 사실을 말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객관적이라고 하는 사실은 사람들이 임의적으로 정하고 그러한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납득되어지는 것에서 있게 되어지는 것이라면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서 합목적적으로 사용하게 되어지는 것으로써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죄인이 흙으로 만든 인생의 등을 가는 것과 같은 것으로 자신들의 유익적 관점일 뿐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으로써의 사실로서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하게 되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는 허망한 풍설을 말하지 말아야 할 것과 또한 다수를 따라서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할 것과 부정당한 증거를 말아야 할 것과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함을 통해 공의를 굽게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그네 된 자들에게 긍휼함이라고 함을 베풂에 있어서는 우리가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을 때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마음에 둘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이 다른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하시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이름으로는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정당함이 없기 때문이며 다른 신들을 말한다는 개념은 하나님의 자존적 절대 정당함에 대한 신뢰를 전혀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써 십계명의 첫 계명과 셋째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것은 모든 것을 어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절기에서 보게 되어지는 무교절이라고 하는 개념도 인위적인 누룩과 같은 것으로 빵을 만들게 되어지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고 함을 고백하며 증거하도록 하셨던 것이며 맥추절과 같은 것은 처음 보리를 수확함에 대한 것과 같이 은혜로 하나님의 첫 열매 안에서의 정체성을 가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과 비교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절기를 지키는 것으로 세번 말씀하시고 있는데 그것은 세번이라는 완전을 의미하는 실제의 사실적 구주께서 오실 것에 대한 예표적 증거로서 세번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이제 예언의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시고 난 다음에 이러한 예표적 행함이라고함을 말하여서 일년에 세번 교회 출석의 입장을 말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의지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더욱 이러한 모든 것들이 예수그리스도 하나님 자신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안에서 사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신들이라고 함을 말한다면 사실이라는 것의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임의적인 개념으로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으로써의 인륜적 있을 수 없는 것을 행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 안에서 절대 자존의 하나님의 정당함을 따른 사실을 믿고 받드는 사람이라고 할 때에 그는 그의 삶에서 임의적으로 행할 수 있는 풍설을 말하지 않는 가운데서 참된 증거자로서 하나님 여호와 자존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증거하게 되어지는 자리에 설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참으로 거짓이라고 함 허망함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정보나 사실이라고 하는 것의 객관적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자존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경우에 나타나게 되어지며 이것은 신적인 것 알지 못하는 신들의 모습을 따르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존의 하나님을 따라서 그 사실을 말하며 하나님의 뜻하심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공평을 말하므로 사실을 말함으로 하나님의 사람들로서의 합당한 증인이 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는 귀한 자리에 서도록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서 자존의 하나님 자신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따라서 참되게 그 사실을 말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구원하심을 증거하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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