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6월 28, 2004

이 땅의 그루터기

2004년6월25일 소망교회 금요철야예배설교
사6:1-13
이 땅의 그루터기

어린 시절 학교 다닐 때에 '마블링'이라는 것을 해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종이에 대리암 무늬를 만드는 기법인데, 물 위에 유성 물감을 떨어뜨려 저은 다음 종이를 물 위에 덮어 물감이 묻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다에 어떤 사고로 인해서 기름이 유출되어지면 여러 가지 피해를 보게 되어지고 그것을 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기름종이를 사용하여 제거작업에 나서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도 하나의 현상적 입장에서만 본다면 마블링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아름다움을 위해 미적인 것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면서도 시각에 따라서는 상당히 귀찮고 괴로운 것으로 인식되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가치관의 혼선까지 줄 수도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주위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합당하게 그 시각의 사실을 말할 수 있다면 그러한 가치관의 혼선을 넘어서 바르게 판단하며 우리 존재의 바른 모습을 말할 수 있고 경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도 그와 같이 가치관의 거룩함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뜻하심 안에서 거룩한 씨로써의 성도들의 모습을 주목하도록 하심을 보며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6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본즉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함을 주목하며 하나님의 그 영광을 주목하게 되어지는데 이사야는 그 자신의 죄인 됨에 대한 것을 놓고 자신의 화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6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에서는 그 때에 천사 즉 그 스랍 하나가 화저(火箸)로 단에서 취한 핀 숯을 손에 가지고 이사야에게 날아와서 그것을 입에 대며 죄가 사하여졌음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이사야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으며 자신을 보내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가서 전할 것을 말씀하시고 어느 때까지 인가를 물음에 있어서도 답변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이사야의 자원하게 되어짐과 그 정한 때와 그리고 주께서 말씀하신 그 때에 거룩한 씨로서 이 땅에 있게 되어지는 그루터기라고 하심의 뜻하심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사야 5장까지의 서론적 증거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과 같이 그 종말의 때에 있게 되어지는 모습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웃시야 왕의 죽던 때라고 함을 말함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과 같이, 웃시야 왕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능력'이라는 뜻과 '나의 힘은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자존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서 의지함이 없는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히스기야 왕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 무기의 내탕고를 다 보여주며 마치 그것을 의지한 것을 자랑하는 죄악으로써 앞으로 있게 되어질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라고 함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이사야의 소명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즉 이사야는 그 이름의 뜻이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즉 자존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이시며 구원이시라고 함을 증거함에 대한 소명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의 무능함이라고 하는 것은 죄된 자로서의 모습이 되어지며 그 죄악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게 되어지는 것임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즉 같은 죄인으로서 상대적인 판단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자가 거룩함의 실제를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부정한 사람들 중에 있으며 부정한 입술을 가진 자로서의 모습을 보게 하심의 은혜를 입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역시 은혜로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서의 한 스랍 곧 천사가 화저로 이사야의 입에 대며 거룩하게 되었다고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권위적 재가에서 거룩하심의 사실을 말하게 되어지는 존재와 사역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은 자의 모습임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이면서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사실을 말하게 되어지는 종으로서의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하는 것을 존재적으로 증거하여야 할 소명을 마음에 가지게 되어지며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즉 임의적 개념에서 나오는 자원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자로서의 재가적 차원의 사람이 되어지는 자로서 그 형상과 그 능력이라고 함이 하나님의 소명적 자리에 서게 하심의 은혜를 베풀며 그 증거를 하도록 하심의 은혜를 입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를 사하심을 입게 되어지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형상적 능력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하심을 따라서 행하게 되어짐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액면적으로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금기적 개념보다도 하나님의 뜻하심을 바라보면서 주의 뜻하심이라고 하는 것을 분별하고 그 뜻하심을 따라서 자원하는 중심으로 일하도록 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의 마지막 때는 12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과 같이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패한 곳이 많을 때까지라고 하심을 볼 때까지입니다.

그것은 자존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구원의 확신과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그 존재의 정당함과 사역의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들이 많고, 우격다짐으로 행하는 자들로서, 바벨론 즉 혼돈 상대적 혼돈이라고 하는 가치관 속에서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주의 구원하심의 사실과 그 증거를 하지 못하는 자리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는 때를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격다짐으로 주의 복음을 배척하는 때에 그곳을 떠나라고 하심은 주의 뜻하심이 그 증거적 시간의 때가 다 되었음을 말씀하심으로 이사야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의식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되어지는 것과 같이 밤나무와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는 것과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것과 같이 실리적인 개념에서 배척되어지는 그루터기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실리적 판단을 받지 못할 때에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상대적인 보편을 의지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절대보편 자존의 절대자의 자기 정당함을 의지하기를 부끄러워하는 때가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자들이 남아 있어 상대적이면서도 거룩함을 드러낼 자들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뜻하심을 나타내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이 다 보편적인 생각이라고 함을 맹신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상대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러한 판단까지도 상대적이라고 함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 여지라고 함을 말할 수 있으면서도 앞선 것의 보편적인 것을 판단하며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있음은 또한 상대적으로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즉 그루터기처럼 실리적 판단이라고 함에서 주장되어지지 않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자존적 절대 보편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현실적인 판단의 실제를 넘어서 진정한 보편적인 판단을 하게 되어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의 상대적인 모습에서도 거룩하게 하시며 그 뜻하심을 받들게 하셨습니다. 주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우리 성도들은 주의 뜻하심과 자라게 하심을 따라서 믿음으로 주의 뜻을 분별하여 행하고자 하는 합당한 이 땅에 그루터기와 같은 종들이 되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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