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6월 14, 2004

시온의 황무함

2004년6월11일 소망교회 금요철야예배설교
사3:1-26
시온의 황무함

어떤 일에 있어든지 상식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여러 가지 학문이라고 하는 것보다도 상식이 있어야 할 것을 말하는 것은 보편적인 생각이라고 함이 없을 때에는 치우치기 마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모습들이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수준에서 있어야만 된다는 식이나 또는 그러한 것이 도저히 용납되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은 극단이 있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신앙의 식상을 불러올 수 있고 또한 이것은 그 실제를 알 수 없다는 측면에서 자기들의 의도하는 바 좋은 대로 즉 소견에 좋은 데로 행하는 경향의 악함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들의 소견에 옳은 데로 행함'에 대한 것이 강조되어지며 책망되었던 것이 성경 '사사기'의 지적이며 책망인데,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을 왕으로 생각하지 않는 인식들의 반란이라고 함과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 시온이 황무함에 대한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좀더 본문을 주목하면서 그 사라질 그들의 방백들의 잘못되어짐을 지적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의 중심을 가지는 자리에 서기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3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 그리고 본문 16절에서 26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라고 하시면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버리심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양식과 의뢰하는 물과 그리고 모사와 공교한 장인들과 능란한 요술자들을 그렇게 하실 것을 말씀하시며 그들의 아기들 그들의 방백들과 적자들로 다스리게 하실 것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의뢰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외면당하는 자의 모습이 될 것에 대한 것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3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여호와께서 변론하려고 일어나심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가난한 자에게 탈취한 물건들이 그 백성의 장로와 방백들에게 있어 책망하시고 있는데 그 표현은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는 것의 부당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16절에서 2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시온의 딸들의 음란함에 따른 교태적 아름다움의 영광의 정체성을 정당화 하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 음란한 가운데서 나타나는 거짓된 영광이라고 함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서 여인의 치부를 드러냄에 비교되어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장정은 칼에 죽고 용사는 전란에 망하게 되어질 것과 시온은 황무하게 될 것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을 주목하면서 기억하게 되어지는 것은 시온의 황무함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실체라고 함은 어떤 것인지 주목함이 세대의 분별을 말하게 되어지는 성도의 안목이 되어지며 깨어있는 종들로서의 바른 모습이 되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서의 처음부분은 서론에 해당되어지는 것으로써 구약의 복음서라고 함을 말하는 것과 같이 신약의 사마리아인의 모습과 또한 요한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서론과 그 상관성을 말할 수 있게 되어짐을 주목합니다. 특히 2장에서는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바와 같이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이와는 달리 보이는 것으로써 오늘 본문에서는 시온이 황무할 것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과 함께하는 거짓된 자들이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함을 교묘히 말하며 상대적으로 그럴듯하게 말하게 되어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에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지 못함에 대하여서 그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가 되어질 것에 대한 말씀하심에 있어서 그것을 받지 못하는 자들의 상대적 자기 정당화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 대하여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리적 문제 즉 그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산적 개념 때문에 그 거짓된 그들의 줏대 없는 말들을 신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 대하여서 그들의 방백들은 자신들을 신뢰하지 말라고 함을 말하는 아이러니칼 한 입장을 취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을 주목하며 그 백성들의 허탈함과 그들의 몽매함의 실제를 드러내야 하는 비참함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셋째본문에서는 시온의 딸들의 부끄러움을 드러내게 되어지는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가 전무하게 되어지는 가운데서의 황페함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여호와 자존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실제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뛰노는 그들의 방백들은 요술자와 같이 자기 정당함을 말하고 있지만 그들도 그들의 실제적 사실을 말하지 못함에 있어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제의 삶을 책임지지 않겠다고 말함으로 혼돈함이 되어지며 무엇이 확실한 것인가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신앙의 삶을 말할 율법의 합당한 증거를 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것을 지적하시면서 하나님이 합리적으로 답변하지 못함을 맷돌질하는 것과 같이 업수이 여기며 자신들의 입장을 상대적으로 세우려고 하는 자들을 책망하심과 그들에게 교태적 정당함으로 자신들의 음란함을 생활화한 자들의 합당하지 못한 증인으로써의 증거적 열매를 맺지 못한 자들로서 책망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날도 주 예수님 안에서 교회의 시대를 살고 있는데 이때가 이 교회의 시대가 종말의 때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실재의 사실을 말하는 복음의 증거자가 되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그럴듯한 말만하고 있는 자들이 있어 그것에 휘둘리고 있는 모습들을 주목할 수 있을 때에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서 진정한 복음의 증거자로서 설수 있도록 힘써야 하며 그 앞서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무엇이 확실한 것이냐는 질문에 답변하지 못한다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업수이 여기는 자들의 현란함에 무색한 자리에 서지 않도록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다윗과 같이 그 장벽들을 뛰어넘는 자들로서 다윗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참된 증인으로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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