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6월 21, 2004

소유와 자기이해

2004년6월20일 소망교회 주일저녁예배설교
출22:1-31
소유와 자기이해

인생으로써 자신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함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성을 말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포괄적인 것을 말함에 있어서도 어떤 작은 것으로 전체를 이해하려고 하는 그러한 중심의 접근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는 말이 그러한 경우의 것이며 하나와 여럿이라고 하는 문제는 오래된 철학자들의 풀려지지 않는 것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의 풀려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실제적인 기준으로 성립되어질 수 있는가를 말하지 않고 하나만 가지고 판단하는 가운데 오판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기준이 성립되어질 수 있는 가운데서 하나라는 것은 전체를 파악하는 가운데서 합당함을 말할 수 있는 것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것 중에 오늘 본문에서는 그와 같은 의미에서 우리 성도들의 정체성이라고 함을 판단하고 가질 수 있도록 하심의 말씀하심으로 나타나는 백성 앞에 세우신 것으로써 소유에 관한 것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식하도록 하시는 율법의 말씀을 주목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6절에서 31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제 팔 계명을 중심으로 말씀하시고 있는데 즉 도적되어진 소유와 관계성에 대하여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했을 경우 배상할 것에 대하여서, 과실치사로 말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포도원에 해를 입히게 되어지는 경우, 물품의 맡겨짐에 있어서 없어지는 경우에 있어서의 손해배상의 문제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6절에서 3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소유에 따른 발생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인관계에서의 그 유의해야 할 점들에 대하여서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어지는 물질적 개념이해라고 하는 것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칠 계명에 대한 언급에서의 율법적 개념과 무당을 살려두지 말 것과 다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지 말 것과 고아와 과부를 돌아볼 것 그리고 그들의 소유를 전당 잡게 되거든 채주와 같이 하지 말고 변리를 받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유사된 자들을 욕하지 말라고 함과 처음 난 아들들과 그리고 소와 양들과 같은 것을 하나님께 드릴 것과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거룩한 사람이 될 것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물질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구체적인 삶에 있어서 이해하시게 하심을 주목합니다.

특히 그 물질의 손해배상이라고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공정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과 그것으로 하나님의 공의적 개념의 반영적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특히 증인들의 경우에서 그 사실이라고 함을 말함에 있어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도록 하고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특히 칠 계명을 어긴 가운데서도 그 악함이라고 함에 있어서 허용되어질 수 있는 것은 그 아내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인을 안다는 개념 '야다'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뜻하심을 알게 되어지는 것과 유비적인 것이므로 그 쾌락적 정의로서의 그냥 지나가는 것으로 이야기 되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당을 죽일 것에 대한 것은 무당이라고 하는 자들의 거짓된 신비라는 개념은 본능적 악함이라고 하는 것과 동일영역에서의 판단으로 음란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 거짓된 욕망이라고 함을 거짓된 신적 권위로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거짓된 신을 말하는 자로서 반드시 죽임을 당하는 자로서 묘사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적 개념의 교제라고 함까지도 부인하는 자들로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사악한 것의 실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적 질서를 따른 대인관계를 해석하고 긍휼을 베풀어야 할 것도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있는데 그것은 고아와 과부를 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의를 편벽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하면서도 그들을 돌아보는 것을 나타내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로서의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적 영광을 나타냄을 도울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의 변리를 받지 말라고 하심에 있어서는 전혀 변리를 받지 말라고 하심 그 자체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채주와 같이 이익이라고 함이 모든 것이 기준이라고 함을 말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까지 가능한 악한 자리에 서는 것으로써의 변리추구를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질서라고 하는 개념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따를 것과 이러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로서의 행함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 처음 것들을 드리는 유월절적인 출애굽의 개념에서 우리가 그 정체성과 소유와 대인관계의 것을 판단할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28절 이하의 말씀에서 읽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유월적 출애굽에서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로서의 정체성과 그것을 위한 소유에 대한 이해와 대인관계를 이해하여야 할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오늘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공의와 긍휼이라고 함을 삶에 나타내는 가운데서 윤리와 소유와 우리의 정체성을 마음에 담아야 할 것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구원 받은 우리 성도들로서 하나님의 공의의 뜻하심을 나타내는 자들로서의 소유와 대인관계의 윤리적 개념을 통해서 우리의 작은 삶의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공의를 나타내는 증인들로서 서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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