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4월25일 소망교회 주일낮예배설교
눅11:29-36
표적(表迹)수사
표적이라는 말은 한자적인 언어로써 다의적 언어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빠른 도적’이라는 뜻도 있고 ‘과녁’이라는 뜻도 있을 수 있고 ‘겉으로 드러나는 흔적’으로써 ‘증거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으로써 표현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다른 표현의 인식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오늘 본문에서는 언급한 뜻들 중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라고 할 수 있겠고 더 축소시켜서 말한다면 세 번째의 뜻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본문에서는 증거적인 측면 특히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유대인들이 구하고 있는 것에 대한 주의 답변하심의 내용적 증거를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에 이 질문 즉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하는 것과 또한 같이 질문하는 것이 귀신을 나가게 함이 귀신의 왕을 힘입은 것이 아니냐는 동일 문맥에서 질문되어진 것입니다. 역시 동일한 문맥에서 다르게 증거되어지는 내용적 증거임을 주목하게 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29절에서 32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33절에서 36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29절에서 32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는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함을 말씀하시면서 남방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온 것에 대한 언급을 하시고 있고 심판 때에는 요나의 표적을 받은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33절에서 3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계속되어지는 주의 말씀으로써 사람들이 등불을 켜서 등경위에 둠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을 예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몸의 등불은 눈인데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또 사람들의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가 보라고 하시며 온전히 밝을 것에 대한 것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과녁삼은 듯한 그러한 표적 수사를 행하고 있고 그 내용적인 것도 그 증거를 찾는 가운데서 표적 수사를 행하고 있다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표적을 말하기 앞서 그 표적의 실제를 말할 수 있지 않다면 그 납득되어지는 표적들이라고 하는 것은 의미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표적은 하나님자신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대한 증거적 실제를 받게되어지는 가운데서의 실제임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언급하고 있는 요나의 증거와 니느웨 사람들의 이 세대에 대한 심판이라고 하는 것과 솔로몬을 찾아온 남방 여왕의 모습을 말씀하심은 우리가 지혜의 실존을 어떻게 이야기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가 고기뱃속에서 스올의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것(욘 2:1~10)과 같은 것은 상대적인 측면에서 합리적 사실들로써 해석되어질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증거도 합리성의 상대적 충족성이라고 하는 것으로써 표현되어질 수 있는 실제의 지혜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남방 여왕은 스바 여왕으로 솔로몬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지혜를 시험하려고 왔던 것입니다.(왕상 10:1~13)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의 실제적인 측면을 말하는 지혜로써 예수께서는 지혜의 근본이 여호와께 있다는 그 말씀하심에서의 정당함을 찾고 있는 솔로몬의 중심을 읽으려고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 자존하시는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을 진정 바라보았다면 주의 가르침의 실제를 알았을 것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 외에 다른 예수님과 상관없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찾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책망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진정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심에 대한 것은 예수님의 아기 때에 있었던 예수님의 자기 계시에 따른 이미 증거된 것임은 표적을 정말로 찾는 사람이라고 하면 인정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성경에서는 이러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눅 2:12)
이러한 천사의 구주 나심에 대한 것을 증거하는 가운데 우리의 진정한 실제의 표적이 예수님 자신이라고 하는 것과 이러한 것에 성령의 감동을 받은 시므온의 증거(눅 2:34)과 안나의 증거(눅 2:38) 즉 이스라엘의 구속함을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아기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음을 통해 아기 예수님이 구주로서 동시에 자체로서의 표적임에 대한 증거를 주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은 이러한 주의 종들의 증거라고 함이 솔로몬의 경우와 같이 자존하시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인(印)쳐진 것으로 솔로몬의 지혜의 실존과 동일한 것이 되어진다는 점에서 스바 여왕의 만나본 지혜와 그것이 상대적 충족성이라고 함으로 판단되어질 것이 아니라는 점까지 인식하도록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비난을 위해 하늘로써 오는 표적을 구함은 이미 상대적 합리적 충족성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요나의 실제적인 판단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한 솔로몬의 지혜의 실존이라고 하는 것에 증거라고 하는 것과 같이 상대적 표적을 구한다는 것은 옳고 그름이라는 시비(是非)를 바꾸는 무익함을 말하는 악한 세대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전에 범죄하여 시비를 바꾸었으나 내게 무익하였었구나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욥 33:27~28)
이것은 주의 구속하심에서 옳고 그름의 시비를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실제의 기준이 언약적으로 실제적으로 주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 예수님이 바로 빛이라고 하는 것 생명의 빛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7)
이러한 예언하심이 천사들의 표적이라고 한 예수님의 나심이 그 예언의 표적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고 이러한 것은 진정으로 영존하시는 아버지로서의 예수그리스도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솔로몬의 지혜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입는 자들의 지혜와 동일한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실제의 지혜이거늘 사람들은 다른 범신적 개념의 표적의 실제가 있다고 함을 말하고 있는 가운데서 옳고 그름의 시비를 바꾸는 무익한 자들로서 그 악함과 교만을 말하게 되어지는데 그 실제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빛을 등경위에 두지 못하고 있는 자들로서 등불을 켜지 못하는 잠자는 졸고 있는 미련한 여인들의 모습임을 지적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 외에는 다른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행 4:12) 하심에 대한 성경의 증거는 표적을 구하며 시비를 바꾸는 그러한 자들의 무익함과 악함이라고 하는 것이 판단되어지는 것임과 그것이 이미 요나와 그 전도함을 받은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를 심판하고 있음을 지적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 외에는 참된 길이 없으며 분별력의 실제를 말할 수 없는 것으로 예수님이 진정한 생명의 빛이 되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참된 구속을 바라는 자들로서의 예수님 생명의 길과 진리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로써 빛된 자리에 항상 서시며 세상에 빛이 되라고 하신 말씀을 잘 받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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