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4월 22, 2004

주님의 그릇이라

2004년4월21일 소망교회 수요예배설교
행9:1-22
주님의 그릇이라

요즘에는 그릇 세척기도 있어서 그릇을 씻는 어려움이 덜어지고 여유를 찾게 되어지는 그러한 것을 말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물론 아직 서민층으로 보급 확대되어지지 않은 가운데서 어쩜 그냥 그렇구나하는 그러한 생각뿐 그렇게 와 닿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그릇을 닦고 세척하는 그러한 것과 같이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씻기를 원하는 그러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죄라는 것과 또한 아픈 기억들이라고 하는 것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한 것을 말할 수도 있는 사도 바울의 경우를 주목하게 되어지는데 그가 받은 은혜라고 함을 기억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섭리를 주목하며 또한 증거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0절에서 22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스데반집사의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함의 입장을 취하였던 사도 바울이 주의 제자들, 특히 빌립과 같은 자들의 복음 전함과 같은 그러한 정황적인 것을 분석하는 가운데서 여전히 위협과 살기를 가지고 진멸하려고 다메섹까지 가는 자신의 사역의 정당함을 위한 또한 그곳에 가서의 권세라고 하는 것의 객관적인 물증을 가지고 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도중에서 음성으로 그에게 만나주시고 자신이 핍박하는 예수님의 인도하심에서 그가 금식하며 회개하는 자리에 이름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0절에서 22절까지의 말씀에서는 그러한 사울을 만나주신 예수님께서는 그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라는 자에게 사울이 주의 이름을 위한 택한 그릇이라고 함을 말하면서 그에게 안수하여 보게 하라는 말씀과 그 말씀을 의지하여서 아나니아의 안수함으로 사도 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짐과 보게 되어짐을 기록하고 있고 이제는 주의 종으로써 힘을 다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것을 주목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참으로 주께서 주의 택한 백성들을 기르실 주의 그릇들을 어떻게 다루시고 있는지 주목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되어지는 두 부분은 주님의 택한 백성으로써 그의 이름을 위한 종을 세우시는 섭리를 나타내고 있는데 특히 이것은 주의 택한 백성들을 가르칠 겸손으로 주의 그릇을 닦으시고 계시는 주님으로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욥 33:15~17)

사도 바울은 학문적 깊이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합리성만의 어떤 인식의 확실성을 가질 수 있는 것과 같이 생각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정당함을 따른 종들의 입장을 비판하고 받지 못하였던 자입니다.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겸손이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은혜로서 그의 인간적으로 지울 수 없는 그러한 기억들이라고 하는 것을 실제적으로 지워주시고 주님의 광야식탁에 주의 뜻하심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이미 택하신 바를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이후에 있게 되어지는 모래바람으로 일관되어지는 황사바람이 그리고 그 추위라고 하는 것이 모든 만물을 부서뜨리던 그러한 사막에서 주께서 주시는 만나를 의지하여서 주님이 약속하신 그 땅을 걸어갔던 광야교회의 모습을 주께서 사도 바울에게 알게 하셨던 것이며 또한 그러한 회개하는 가운데서 주의 보편교회의 성도들의 교제 속에서의 한 지역교회의 한 성도인 아나니야의 말씀에 따른 섬김으로 주의 뜻하심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광야교회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이 자기 교회를 세우셨을 때에 그 뜻하심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소명감을 알도록 하나님이 겸손으로 그의 중심을 닦아 주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 주의 이름을 위하여 택한 그릇으로 주의 몸된 보편교회의 성도들을 위한 식탁에 올려놓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주목합니다. 악독이 가득하여 불의에 메인바 되었던 박수 시몬이나 하나님께 드릴 것을 감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참으로 바울도 불의에 메인바 되어지고 가득한 자이지만 주께서 성도의 교제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따르는 성도들의 교제들 속에서 주의 피로 깨끗하게 닦으시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참으로 우리 성도들은 출애굽하여서 약속의 가나안 땅을 향하던 그 백성들과 같이 이제 주의 택한 백성들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실제를 알지 못하는 시대를 걸어가며 주의 뜻하심을 나타내는 그러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주께서는 주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서 주의 성도들의 교제를 통하여서 주께서는 주의 피로 주의 겸손으로 우리를 닦으신다는 것을 마음에 두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우리를 닦아서 주의 성도들을 위한 광야식탁에 올려놓으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순종하여서 주의 뜻하신 바를 담아내는 종들의 전인격적인 증거자들로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들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다고 하는 그러한 사도바울의 중심과 같은 그러한 자리에 나아가며 주님의 길을 예비하시는 주의 그릇들이 다 되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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