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4월 12, 2004

예수님의 부활하심의 실제

2004년4월11일 소망교회 부활주일낮예배설교
롬4:1-25
예수님의 부활하심의 실제

오늘은 교회의 절기를 따라서, 하나님 자신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우리의 허물을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예배로 주님께 경배드리는 날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시19:1).. 우리가 하나님의 만들어주신 세상을 바라보면 비록 죄로 인해서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움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음을 주목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심이라고 하는 것이 상대적인 무한의 모습으로 의식되어지는 것도 그러한 영광의 하나라고 함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상대적인 무한이 절대의 무한을 반영하고 의식하도록 증거하고 있다는 말..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서 각계 각층의 계층이 존재하고 여러 분야가 존재하고 그러한 분야에서도 내재적 탐구라고 하는 것은 끝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학문의 분야라고 하는 것 그 어떤 특정 학문의 분야라고 함을 세계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그 무한히 열려진 것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다원화 된 세상의 모습들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주목함이 옳은 것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주목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그 실제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도 알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머물러버리고 마는 옳지 못한 모습을 봅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의 삶에서 여러 세계를 주목하는 가운데서 식상한 영혼들이라고 함의 피곤함을 반영하는 것인데 이러한 것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마 1:1)라고 함을 알지 못한 것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세계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고 함의 실제적 의미를 마음에 두는 것이 핵심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함이 피곤한 인생들의 다원화 되어진 가운데서의 방황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이 세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마 1:1)의 실체와 그 실체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주목하며 증거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6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과 그리고 본문 17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사도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의로 여김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6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그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에서 이제 다윗의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자의 행복이라고 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상관성을 말할 수 있는 그 할례에 대한 것을 말하며 할례보다도 무할례시에 여호와 하나님 자존의 하나님을 믿음이 의로 여기심을 입은 것과 그러한 것의 행함의 한 증표요 확증적인 완성을 말하는 것으로써의 할례를 이해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17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으로써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라고 함의 언약을 기반으로 한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그 말이 맺어지고 있고 그것의 종국적인 실재와 그에 따른 실제의식을 가지도록하심에 따라 정체성을 말하는 것임을 기억하도록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신약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첫 부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라고 하심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본문의 첫 부분은 아브라함에 대하여서 둘째 부분은 다윗을 말하고 있고 동시에 그 육신적 언약의 표현으로써의 할례로서 말하고 있고 그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의 온전한 완성이라고 함을 말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증거를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주님의 이 공식적인 이름은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구주이심을 고백하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뜻으로 구약의 메시아라는 말과 동일한 것이며 그가 우리의 실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운데서의 정당함을 부여하는 가운데서의 우리의 존재의 실존을 말하게 되어지는 즉 우리의 존재가 합당하다고 함을 말씀하시는 것으로써의 의로우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사람으로써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어지는 것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우리 성도가 그러한 정체성을 입는 존재적 정당함을 하나님께 얻게 되어지는 것은 우리의 삶에 주관적인 차원에서도 실제적인 의식을 부여하여 받을 수 있는 권한도 이미 구별되어진 가운데서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함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짐은 하나님의 구별하심의 주권적 행함이라고 함의 영광과 권세가 교회에게 주어진 것에서 기인되어지는 것입니다. 즉 그것이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메일 것이라고 하신 주의 세우시는 교회의 권세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그 믿음으로 어떤 것을 실제적으로 말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분별하여서 실제로 받음에 만물을 회복시키는 자들로서의 일반적인 사역적인 삶의 권세를 가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이 실제의식을 가지게 되어지는 것이고 그것은 주관이라고 하는 것으로 그 확실성을 말할 수 없다는 비판에서 자유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다원화 되어지는 것들의 실재를 바라볼 수 있고 결코 넘어지지 않는 자들로서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 정당함은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그것을 의로 여기심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 자존하시는 하나님의 주시는 권세 안에서의 실제적인 판단을 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에 있어서 예수님의 의롭다 하심으로 우리의 존재적 정당함을 입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그 주권적 권세까지도 한정적이면서도 실제적으로 받게 되어지는 가운데서 세상의 진정한 실재들을 분별하는 자리에 서게 되어지며 하나님 앞에서 참된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가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따라 우리의 허물이 사함을 받게 되어지고 우리의 존재와 삶에 진정한 정당함과 그 실재를 판단할 수 있는 것으로써의 기독교적인 삶의 정체성을 가지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세계를 알게 되어지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의미를 마음속에 담을 때에 알게 되어지며 세상을 알게 되어지는 자리에 서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마음속에 담는 자들로써 참된 주의 성도들로써의 기쁨과 행복이 평생에 함께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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