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17일 소망교회 수요예배설교
롬1:1-7
복음을 위하여
우리가 일반적으로 ‘위한다’는 것은 그 뜻에 ‘보호한다 또는 변호한다’는 것과 더 나아가서 그것의 정체성을 위한 노력들이라고 함을 말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뜻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마치 주의 복음을 보호한다는 개념이 우리 증거자들에게 있는 것과 같이 오해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복음이라고 함을 우리가 변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주의 복음에 대한 어떤 사실들을 기술하고 방어하는 것에 몹시 불편한 입장을 취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다른 이들의 비판적 목소리가 있음을 의식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비판이 있다는 것과 그 비판이 성립되어진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였던 사실에 근거한 불편한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주의 복음을 위한다는 사도 바울의 증거에서는 전혀 그러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주목하며 주의 복음의 능력이라고 함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주목하며 또한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2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3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 그리고 본문 5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2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음과 복음은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3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예언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서 그의 출생하심과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음과 곧 그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5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사도 바울은 그로 인하여 은혜와 직분과 그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하심에 대한 증거를 하며 이 글을 받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있기를 축복하며 인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그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의 내용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음에 대한 증거의 말씀과 그로 인하여서 주시는 주의 소유된 자들로서의 뜻하심을 받게 되는 은혜를 증거함입니다.
복음은 하나님 자신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에 관하여 미리 예언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고 함을 말할 때에 그것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였을 뿐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식의 잘못된 생각을 하기 쉬운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고 함을 말씀하심은 역시적 시간 안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때도 있었다는 것과 자신이 메시아로서 자기 도취했다는 그러한 합리적 가정에서 그러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고 함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다른 사람들도 핑계할 수 없는(롬 1:20; 2:1)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의 인정과 찬양’이 있게 된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본문에서는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하심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죽음이라고 하는 상대적인 존재와 상대적인 비존재라는 개념의 판단이라고 하는 자리에 서는 존재가 아니라 자존하는 자로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그가 바로 자존의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존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 안에서 정당함을 입게 되어지는 정당함 속에서 인간적인 모습과 계보적 모습으로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즉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이라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주장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심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표현적 상대성인 아들로서의 증거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며 증거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존재를 자기가 주장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의 자격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다시사심으로 자존의 하나님으로써 생명의 주인으로서 영원한 생명으로서 우리 성도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인하여 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예수께서 기름부음을 받으신 자로서 거룩하게 구별하여 의롭다 칭하심으로 진정한 실재와 실제를 말씀하시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로 세상에 속하였으면서도 그것의 판단을 받지 않는 실재를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성도들은 주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어지는 가운데서는 주님의 의롭다하심에 상대적인 판단의 정죄를 받지 않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윤리의식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은혜의 동기를 따라서 나타나며 그것은 빗진 자의 모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빚진자임을 언급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14절)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주님은, 시간이라는 역사라는 개념의 판단에서 자기도취적 개념에서 사람들의 등 떠밀리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어진 것이 아니라, 진정 자존하시는 하나님 자신이심을 죽으심과 부활하심에서 나타내심으로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신 가운데 사람들이 그러한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핑계치 못할 복음으로서 자신을 나타내심을 의미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이 핑계할 수 없는 주의 복음 그 아들에 관한 것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는, 주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어지는 가운데서 주의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하신 것에 대한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하는 그 중심에서 윤리적 동기로 나타나며 그러한 가운데서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보내심을 받았을 때에 진정 주의 복음을 위하여 힘써 행하고자 하는 중심을 주께서 우리 성도들 중심에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 우리의 삶이 주의 복음을 위해 정진하는 삶이 되어지는 은혜를 입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http://geocities.com/vosscare
설교자
롬1:1-7
복음을 위하여
우리가 일반적으로 ‘위한다’는 것은 그 뜻에 ‘보호한다 또는 변호한다’는 것과 더 나아가서 그것의 정체성을 위한 노력들이라고 함을 말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뜻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마치 주의 복음을 보호한다는 개념이 우리 증거자들에게 있는 것과 같이 오해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복음이라고 함을 우리가 변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주의 복음에 대한 어떤 사실들을 기술하고 방어하는 것에 몹시 불편한 입장을 취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다른 이들의 비판적 목소리가 있음을 의식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비판이 있다는 것과 그 비판이 성립되어진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였던 사실에 근거한 불편한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주의 복음을 위한다는 사도 바울의 증거에서는 전혀 그러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주목하며 주의 복음의 능력이라고 함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주목하며 또한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2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3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 그리고 본문 5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2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음과 복음은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3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예언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서 그의 출생하심과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음과 곧 그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5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사도 바울은 그로 인하여 은혜와 직분과 그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하심에 대한 증거를 하며 이 글을 받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있기를 축복하며 인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그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의 내용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음에 대한 증거의 말씀과 그로 인하여서 주시는 주의 소유된 자들로서의 뜻하심을 받게 되는 은혜를 증거함입니다.
복음은 하나님 자신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에 관하여 미리 예언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고 함을 말할 때에 그것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였을 뿐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식의 잘못된 생각을 하기 쉬운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고 함을 말씀하심은 역시적 시간 안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때도 있었다는 것과 자신이 메시아로서 자기 도취했다는 그러한 합리적 가정에서 그러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고 함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다른 사람들도 핑계할 수 없는(롬 1:20; 2:1)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의 인정과 찬양’이 있게 된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본문에서는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하심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죽음이라고 하는 상대적인 존재와 상대적인 비존재라는 개념의 판단이라고 하는 자리에 서는 존재가 아니라 자존하는 자로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그가 바로 자존의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존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 안에서 정당함을 입게 되어지는 정당함 속에서 인간적인 모습과 계보적 모습으로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즉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이라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주장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심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표현적 상대성인 아들로서의 증거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며 증거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존재를 자기가 주장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의 자격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다시사심으로 자존의 하나님으로써 생명의 주인으로서 영원한 생명으로서 우리 성도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인하여 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예수께서 기름부음을 받으신 자로서 거룩하게 구별하여 의롭다 칭하심으로 진정한 실재와 실제를 말씀하시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로 세상에 속하였으면서도 그것의 판단을 받지 않는 실재를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성도들은 주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어지는 가운데서는 주님의 의롭다하심에 상대적인 판단의 정죄를 받지 않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윤리의식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은혜의 동기를 따라서 나타나며 그것은 빗진 자의 모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빚진자임을 언급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14절)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주님은, 시간이라는 역사라는 개념의 판단에서 자기도취적 개념에서 사람들의 등 떠밀리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어진 것이 아니라, 진정 자존하시는 하나님 자신이심을 죽으심과 부활하심에서 나타내심으로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신 가운데 사람들이 그러한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핑계치 못할 복음으로서 자신을 나타내심을 의미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이 핑계할 수 없는 주의 복음 그 아들에 관한 것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는, 주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어지는 가운데서 주의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하신 것에 대한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하는 그 중심에서 윤리적 동기로 나타나며 그러한 가운데서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보내심을 받았을 때에 진정 주의 복음을 위하여 힘써 행하고자 하는 중심을 주께서 우리 성도들 중심에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 우리의 삶이 주의 복음을 위해 정진하는 삶이 되어지는 은혜를 입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http://geocities.com/vosscare
설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