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7일 소망교회 주일낮예배설교
눅22:24-38
전대를 가지며, 검을 사며
일상적인 어떤 관찰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현상을 바라볼 때에 가장 중요한 어떤 전환점이라든지 어떤 발상의 시점을 분별해낸다면 이해하고자 하는 것에 가장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것과 그것에 따른 어떤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고 그런 처신을 통하여서 자신의 유익을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회적인 또는 다른 어떤 현상에 대하여서 해석해내고 또한 그러한 가운데서의 납득의 당위성을 인식하고자 하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것은 학문적인 개념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 이어지는 또는 현실에서의 학문적 개념으로 이어지는 가운데서 많이들 행하여 왔고 그러한 것은 오늘날도 중요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의 판단의 실제라고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것과 어떤 국한되어진 가운데서만 그 당위성이 옳은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서 너무 분별하지 못하고 있고 이러한 것은 학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의 만찬에서 상당한 판단의 차이를 말씀하시고 있고 이것은 그때만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점 새 언약적인 관점에서 말씀하심의 사실들을 나타내고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을 주목하며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24절에서 34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35절에서 38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24절에서 34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성만찬 상에서 떡과 포도주를 떼며 나누어주심으로 새 언약을 세우심에 이어서, 누가 더 큰 자인가라는 시비가 나타나 다투고 있는데 예수께서는 이방인들의 임금들의 판단과 주님의 말씀하심의 차이를 말씀하시고 있고 하나님 나라를 제자들에게 맡기심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몬에게 시험이 있을 것과 주의 기도하심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돌이킨 후에 형제를 굳게 하라는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35절에서 38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전에 전대를 가지지 않음과 그 보냄을 받았을 때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과 이제는 전대있는 자는 가질 것과 검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제자들이 분별하지 못하여 다툼이 되어지는 것의 분별하여야 할 사실과 그 시점 그리고 그 사역적인 측면에서의 말씀하심의 변화와 지속성이해에 있습니다.
먼저 요구되어지는 것으로 말할 수 있는 누가 크냐는 다툼에 있어서의 관점과 중심의 분별인 것입니다. 즉 세상에서의 나라라는 개념은 권세라고 하는 것을 세상적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높음이라고 하는 것에서 그 권위와 당위성을 말할 수 있고 그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님을 위하여서 일한다는 것이 자신들의 입신양명이라는 개념으로 상대적 우위적 실제의식으로 다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상에서의 상대적 우위라는 개념에서 비로소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주님께서 섬기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며 또한 그러한 가운데서 즉 주님이 행하심에 대한, 주님으로부터의 정당함에서 그 권위의 당위성을 말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즉 고레스 왕과 같이 상대적 우위가 주께로부터 언약가운데서 구별되어지는 가운데서 사용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면서도 주의 언약하심에서 섬김이라고 함을 위한 가운데 그리고 그러한 구별적 사역적인 권세의 당위성을 말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시몬에게 사단의 청구가 있음과 주님의 기도가 있음을 말씀하시고 있음을 주목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앞으로 되어질 일에 현실적인 실제의 예언이 되어지며, 더 나아가서 새 언약을 받을 자들의 되어질 일들에 대한 실제적인 예언의 예표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되어질 현실적인 실제의 예언이라고 함은,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함이 되어지며 그러한 가운데서도 회개하게 하심의 은혜가 있도록 하시는 주의 의도하심과 주장하심의 섭리가 있을 것을 말씀하심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언약을 받을 자들의 되어질 일들에 대한 실제적인 예언의 예표적인 것이라고 함은, 새 언약이라고 함을 받은 교회의 모습에 마치 요한 계시록에 나타나는 해를 입은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에 용이 삼키려고 했던 것과 같이 주의 나심과 주의 몸된 교회의 탄생을 부정하고자 하는 사단의 모습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계 12:1~6 참고)
그리고 두 번째 본문으로 주목하는 오늘 본문에서 전에는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셨을 때에 부족함이 없음을 말씀하심은 어떤 양식을 위한 합목적적인 개념으로나 또는 양식을 위한 돈이라고 함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비로소 의지하지 않도록 하심의 의미였으며 그것을 통하여서 여호와이레의 하나님 자신이 예수그리스도 자신이심을 나타내시고자 하심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또 달리 주목하게 하시는 말씀을 나타내시는데, 그것은 전대 있는 자는 전대를 가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고 검을 가질 자는 겉옷을 팔아 살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보는 관점의 전환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본문의 문맥상 예수께서 세우신 새 언약의 지지 가운데서의 그 정당함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줄 수 있는 전대를 준비하라고 하심의 뜻하심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움에 대한 것을 말씀하심으로 진리의 검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을 자신의 존재의 부끄러움이라고 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의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도 비로소 의지하는 자리에 서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헐벗게 되어지는 가운데서도 그 복음으로부터의 존재적 정당함을 찾는 중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전대라고 함은 돈 주머니를 말하는 것인데 이는 이 때 당시에 있게 되어지는 달란트라는 개념이 돈의 개념과 같이 사용되어지고 있음을 기억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주 안에서 개발하며 주의 부르심에 그 달란트로 화답할 수 있도록 또한 그러한 하나님 앞에서 달란트를 분별하여서 주 앞에서 섬김의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주께서 성찬식을 행하시면서 주의 나라를 제자들에게 맡기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되어질 일들이라고 함과 그 시점이 주의 잡히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시작되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세상의 정치적 개념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에 대하여서 하나님의 말씀하심 안에서의 질서적인 실제를 인식하도록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즉 행정적 관료적 개념에 잡히고 계보적인 명령체계라는 개념에서 이루어지는 질서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믿음 안에서 새롭게 구별하여서 인식하는 섬김의 체계를 이해하도록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하도록 하시면서 주의 뜻하심의 달란트를 분별하여 개발하고 그 가운데서 때를 따라서 주의양식을 나누어줄 수 있는 자들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가운데서 섬기는 자들로 서도록 말씀하시고 있고 주의 말씀 안에서 그 앞에 되어질 일들을 분별하며 주의 말씀의 검을 사모하며 준비하며 믿음의 선한싸움을 싸워야 할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주의 뜻하심을 분별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나에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서 주의 성도들의 교제 속에서 섬길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며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서 힘써 믿음의 선한 싸움의 달려갈 길을 잘 달려가시는 가운데 의의 면류관을 받으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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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