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15일 소망교회 수요예배설교
롬2:1-16
판단하지 말라
우리 인생이 어떤 일을 하면서 판단하여야 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섣부른 판단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비적 지식이라고 함의 필요성은 또한 갖추어야 한다는 소리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급이라고 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니면서도 잘 준비되어진 사전지식(事前知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판단들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일반적인 정당함이 부여되어진 가운데서 인식의 사실이 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얻지 못하는 가운데서는 그러한 일반적인 인식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인식적 공감이라고 함의 사실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두게 되어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판단의 사실을 말할 수 있다고 할 때에 그렇지 못한 판단을 하지 말라고 하심으로 받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2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남을 판단함에 대하여서 같은 일을 함이라고 함과 그와 같은 판단이 그 판단하는 자에게 있게 되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러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하심을 피하지 못할 것에 대한 말씀도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며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는 것이 되며 다만 고집과 회개하지 않음이 그날의 진노를 쌓음이라고 또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유대인에게 또한 헬라인에게 이며 이러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심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2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심에 대한 이유적인 측면의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일반 사람들의 율법에 대한 인식을 본성적 입장에서 말씀하시고 있고 그러한 것에 대한 판단과 심판이 총체적으로 주 예수의 날에 있게 되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판단 중지’를 요구함에 대한 실제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는 개념에서 성도들의 연약함이나 또는 성도들을 알아주라고 하심의 말씀을 따름도 같이 정죄되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dilemma) 아닌 딜레마로써 오해되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그리고 불행히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또한 많은 성도들의 분란의 요소가 되었질 수도 있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도덕주의적 해석에서 서로의 판단의 근거 아닌 근거처럼 자리매김 되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에서 좀더 바른 판단을 위한 주목할 필요가 있는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현상학이라는 학문적인 이성에서는 그 기본적 출발을 '판단중지'(epoche)라는 개념에서 찾고 있습니다. 즉 사물을 있는 그대로 왜곡하지 말고 보자는 것의 전제적 언급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판단함에 있어서 선입관의 왜곡됨을 막을 수 있는 상당한 타당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판단 중지’라는 그 개념 자체는 또한 전제되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상대적 자기모순과 기만성을 인정해야 하는 당위성도 있게 되어진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상대적으로 가능한가?’하는 것과 ‘그러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라는 것에 검증되어지지 않은 인식이라는 것입니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 마찬가지로 개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진정한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합리성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서도 자체적 정당함을 스스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의를 구하여야 하는 가운데서 역시 정당함이 없는 합리성도 갖추지 못한 그러한 학문적 개념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의 초등학문의 실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학문적 이야기라고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일상적인 용어로 본다면 현실파악 현실이라고 함의 실제적인 판단이라고 함이 진짜라고 임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러한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것입니다.
더욱 참된 신으로서 자존하시는 하나님의 스스로 취하시는 자존의 절대 정당함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함을 이미 바울이 본문에서 증거한 바이며 그러한 것이 복음은 핑계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자존의 절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절대 정당함을 가지시고 상대적인 것을 가지고 절대적으로 말씀하심에 있어서는 상대적이라는 판단만으로써 임의적 사실을 말하는 자들의 모습은 그 정체성이 판단 받게 되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에 나타나고 있는 판단이라는 개념은 그 문맥상에서 볼 때에 1장에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이 재가를 받지 못한 가운데서 ‘스스로 지혜 있다’(롬 1:22)고 함에 연속성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으로 나타남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의 사실의 판단을 하지 않는 가운데서 상대적인 되어지는 현상적 판단으로써 사실을 임의적으로 말하고 형제들의 믿음의 판단이 상식이라는 것에 그리고 상대적 윤리개념으로 판단되어져야 하는 것과 같이 말하고 그 주관적 동의를 할 수 있는 사람들 자신들의 모임 즉 ‘당을 만드는 자’(롬 2:8)가 화가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들의 임의적 당위성을 다른 사람들의 동의적인 차원에서 주관적으로 말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불특정 다수에 의한 자기 고집의 모습을 당연시하는 것으로써 주 앞에서 옳은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그러한 악한 인식과 행동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과 같이 그러한 임의적 성경해석과 율법해석으로 성도들의 믿음의 행보를 판단하는 것을 옳다고 하는 모습들이 있게 되어지는 모습도 책망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9절에 나타나고 있는 악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나타나고 있는 자들은 그러한 것의 유혹을 참는 자들과 선을 행하는 자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의 율법을 먼저 받은 자들과 나중에 받게 되어진 자들 즉 유대인으로써 그리스도인과 헬라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을 말씀하심으로 전체적인 성도들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본성도 하나님이 지으신 자들로써 그들의 중심에 남아있는 하나님의 형상적인 영향력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율법의 영광을 나타내는 가운데 판단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는 가운데서의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주관적 임의적 판단 사실로 형제를 판단하는 세대를 주 예수의 날에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심으로 오늘날 주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믿음은 주관적인 형식으로써 객관적 모습의 열매를 맺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 믿음의 주관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할 때에는 그 객관적인 사실성이 부여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주의 교회의 권세 성도의 권세로써 이미 하늘에서 이룬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시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왕권의 재가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의 주관성이라고 함에 있어서는, 임의적 주관을 임의적으로 믿음으로 말함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말씀이신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시고 그 말씀하심 안에서 교회를 세우시고 그 질서를 따라서 객관적인 지도를 받게 하시는 가운데서 양심의 자유와 실제를 따라서 자라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처럼 임의적 상대적 개념에서 함부로 형제를 판단하는 가운데서 또는 동일한 상대적인 개념에서의 금기적인 판단중지라든지 이러한 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써 심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악한 자리에서 나와서, 주의 말씀하심을 따라서 그리고 그 세워진 질서를 통한 가르침을 따라서 신앙양심 즉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에 따른 실제를 바르게 판단하는 가운데 주의 복음의 사실을 주의 오실 때까지 증거하시는 귀한 성도로서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http://geocities.com/vosscare
설교자
롬2:1-16
판단하지 말라
우리 인생이 어떤 일을 하면서 판단하여야 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섣부른 판단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비적 지식이라고 함의 필요성은 또한 갖추어야 한다는 소리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급이라고 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니면서도 잘 준비되어진 사전지식(事前知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판단들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일반적인 정당함이 부여되어진 가운데서 인식의 사실이 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얻지 못하는 가운데서는 그러한 일반적인 인식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인식적 공감이라고 함의 사실을 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두게 되어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판단의 사실을 말할 수 있다고 할 때에 그렇지 못한 판단을 하지 말라고 하심으로 받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2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남을 판단함에 대하여서 같은 일을 함이라고 함과 그와 같은 판단이 그 판단하는 자에게 있게 되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러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하심을 피하지 못할 것에 대한 말씀도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며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는 것이 되며 다만 고집과 회개하지 않음이 그날의 진노를 쌓음이라고 또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유대인에게 또한 헬라인에게 이며 이러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심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2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심에 대한 이유적인 측면의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일반 사람들의 율법에 대한 인식을 본성적 입장에서 말씀하시고 있고 그러한 것에 대한 판단과 심판이 총체적으로 주 예수의 날에 있게 되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판단 중지’를 요구함에 대한 실제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는 개념에서 성도들의 연약함이나 또는 성도들을 알아주라고 하심의 말씀을 따름도 같이 정죄되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dilemma) 아닌 딜레마로써 오해되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그리고 불행히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또한 많은 성도들의 분란의 요소가 되었질 수도 있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도덕주의적 해석에서 서로의 판단의 근거 아닌 근거처럼 자리매김 되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에서 좀더 바른 판단을 위한 주목할 필요가 있는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현상학이라는 학문적인 이성에서는 그 기본적 출발을 '판단중지'(epoche)라는 개념에서 찾고 있습니다. 즉 사물을 있는 그대로 왜곡하지 말고 보자는 것의 전제적 언급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판단함에 있어서 선입관의 왜곡됨을 막을 수 있는 상당한 타당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판단 중지’라는 그 개념 자체는 또한 전제되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상대적 자기모순과 기만성을 인정해야 하는 당위성도 있게 되어진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상대적으로 가능한가?’하는 것과 ‘그러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라는 것에 검증되어지지 않은 인식이라는 것입니다. 즉 사실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 마찬가지로 개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즉 진정한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합리성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서도 자체적 정당함을 스스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의를 구하여야 하는 가운데서 역시 정당함이 없는 합리성도 갖추지 못한 그러한 학문적 개념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의 초등학문의 실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학문적 이야기라고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일상적인 용어로 본다면 현실파악 현실이라고 함의 실제적인 판단이라고 함이 진짜라고 임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러한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것입니다.
더욱 참된 신으로서 자존하시는 하나님의 스스로 취하시는 자존의 절대 정당함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함을 이미 바울이 본문에서 증거한 바이며 그러한 것이 복음은 핑계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자존의 절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절대 정당함을 가지시고 상대적인 것을 가지고 절대적으로 말씀하심에 있어서는 상대적이라는 판단만으로써 임의적 사실을 말하는 자들의 모습은 그 정체성이 판단 받게 되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에 나타나고 있는 판단이라는 개념은 그 문맥상에서 볼 때에 1장에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이 재가를 받지 못한 가운데서 ‘스스로 지혜 있다’(롬 1:22)고 함에 연속성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으로 나타남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의 사실의 판단을 하지 않는 가운데서 상대적인 되어지는 현상적 판단으로써 사실을 임의적으로 말하고 형제들의 믿음의 판단이 상식이라는 것에 그리고 상대적 윤리개념으로 판단되어져야 하는 것과 같이 말하고 그 주관적 동의를 할 수 있는 사람들 자신들의 모임 즉 ‘당을 만드는 자’(롬 2:8)가 화가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들의 임의적 당위성을 다른 사람들의 동의적인 차원에서 주관적으로 말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불특정 다수에 의한 자기 고집의 모습을 당연시하는 것으로써 주 앞에서 옳은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그러한 악한 인식과 행동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과 같이 그러한 임의적 성경해석과 율법해석으로 성도들의 믿음의 행보를 판단하는 것을 옳다고 하는 모습들이 있게 되어지는 모습도 책망을 받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9절에 나타나고 있는 악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나타나고 있는 자들은 그러한 것의 유혹을 참는 자들과 선을 행하는 자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의 율법을 먼저 받은 자들과 나중에 받게 되어진 자들 즉 유대인으로써 그리스도인과 헬라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을 말씀하심으로 전체적인 성도들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본성도 하나님이 지으신 자들로써 그들의 중심에 남아있는 하나님의 형상적인 영향력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율법의 영광을 나타내는 가운데 판단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는 가운데서의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주관적 임의적 판단 사실로 형제를 판단하는 세대를 주 예수의 날에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심으로 오늘날 주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믿음은 주관적인 형식으로써 객관적 모습의 열매를 맺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 믿음의 주관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할 때에는 그 객관적인 사실성이 부여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주의 교회의 권세 성도의 권세로써 이미 하늘에서 이룬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시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왕권의 재가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의 주관성이라고 함에 있어서는, 임의적 주관을 임의적으로 믿음으로 말함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말씀이신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시고 그 말씀하심 안에서 교회를 세우시고 그 질서를 따라서 객관적인 지도를 받게 하시는 가운데서 양심의 자유와 실제를 따라서 자라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처럼 임의적 상대적 개념에서 함부로 형제를 판단하는 가운데서 또는 동일한 상대적인 개념에서의 금기적인 판단중지라든지 이러한 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써 심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악한 자리에서 나와서, 주의 말씀하심을 따라서 그리고 그 세워진 질서를 통한 가르침을 따라서 신앙양심 즉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에 따른 실제를 바르게 판단하는 가운데 주의 복음의 사실을 주의 오실 때까지 증거하시는 귀한 성도로서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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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