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2월 13, 2004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라

2004년 12월 10일 소망교회 금요철야예배설교
사51:1-16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라

일반적으로 음식을 만들 때에 음식재료들의 비율이라고 하는 것과 그 조화가 잘 되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것으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튀김이나 붙임을 하기 위하여서 밀가루와 물을 적정량으로 섞이도록 잘 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위해 공기나 그 외 불순불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도 사람들의 오고가는 그 관계 속에서 그 역사의 휘몰아치고 때로는 도도히 흐름 속에서 이러한 감칠맛 나는 음식을 만드는 것에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즉 ‘살맛나는 세상’에 대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참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모습으로 우리를 보내시며 이처럼 세상을 휘저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속에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향기로운 산제사를 드릴 수 있는 자리 그러한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음을 주목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9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2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이사야 50장 10,11절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는 자들로써 슬픔에 눕게 될 것을 말씀하심을 이어서, 주께서 위로하시는 내용에 대한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조상 아브라함의 혈혈단신 때에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심에 대한 것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로하심과 그 내용적인 것을 언급하시고 있습니다. 즉 광야로 에덴 같고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셨음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주의 공의를 세우심과 섬들이 주의 팔을 의지할 것에 대한 것과 하나님 자신의 의가 폐하여지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를 아는 자들로써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말며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9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이와 같은 주의 말씀하심에 성도들의 화답으로써의 실제의 기도가 이사야의 언급으로 기록되어지고 있는데 여호와의 팔이 깨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게 되어질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12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위로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심을 반복하여 말씀하시면서 학대자의 분노의 실재를 부정하시고 있고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과 그 양식이 핍절되어지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말씀하시면서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로 흉용케 하는 자이심을 말씀하고 시온에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려하였음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되어지는 가운데서 그들의 실제적인 증거의 내용이 성도들의 믿음의 선한 싸움으로 나타나게 되어지는데 하나님의 이름에 나타나는 신실하심을 의지하지 않는 가운데서 슬픔에 누이는 자들에게 위로하시는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위로의 본문으로써 시작을 아브라함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은 신약의 시작 즉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심에 대한 것에서 위로의 실제라고 함이 공식적으로 나타내신바가 될 것을 구약적으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러면서도 실제적으로 주의 말씀의 사실성을 믿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도 구약적인 시대적 한계가 있으면서도 본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한과 축복을 말씀하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함은 3절에서 보는 것과 같이 광야로 에덴동산과 같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은 그것은 광야교회의 모습이라고 함이 에덴동산과 같이 언급되어지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통치하심의 온전성이 상대적으로 차이가 있어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다스리시는 분으로부터의 그 정체성을 말할 수 있다는 것 그 존재와 그 존재에게 주어지는 위로라고 함의 사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하라고 4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의라고 함의 사실을 받는 자들 즉 의를 아는 자들이 사람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고 훼방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그들의 비방과 훼방이라고 함의 실존이라고 함이 정당하지 못하며 그 실존을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으로 그것이 실제로 부정되었음을 받을 수 있도록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성도들이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게 될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주 앞에 그 믿음의 소원을 말하게 되어지는데 하나님께서는 위로하는 자가 다름 아닌 자신이심을 기억하도록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50장 10절과 11절의 말씀과 같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는 가운데서 즉 그 이름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는 자존의 하나님으로부터의 실제의 정당함을 찾게 되어지는 가운데서 그러한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는 것의 사실을 받을 수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주체로서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며 ‘라합을 저미시며 용을 찌르신 이’이심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면서 즉 바다를 휘저으시면서 그러한 불법의 존재를 부정하시는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산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격동의 세월, 어떤 소설이나 그러한 것에서 나오는 말이 현실적인 수식으로 자리매김 되어지는 그러한 세월을 살아가면서 참 고민도 많고 주의 말씀하심 보다도 현실이라고 함이 더 실제라고 하는 사실의 강요를 받는 삶 속에서 지쳐 슬픔의 잠을 잘 때가 있는 것이 현실의 인생의 모습이 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격동이라는 세월의 풍파와 세파는 바다를 저으시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정당함에서 사실과 존재를 말할 수 있음을 기억할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광야와 같은 세상길 걸을 때에도 능히 걸을 수 있게 하시고, 피곤하여 산을 넘는 발길을 기뻐보시는 주님을 의지하여서 그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서 세상의 격동의 세월의 담을 넘으며, 슬픔과 탄식을 떠나, 주의 복음의 증거자들로서의 성도의 향기로운 산 제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또한 전혀 낯설지 않는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 뵙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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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