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8월 21, 2004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됨의 의미

2004년 8월 15일 소망교회 주일낮예배설교
눅17:20-37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됨의 의미


어떤 이가 말했던 사회계약설이라는 것에 대하여서 굳이 말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우리 인생은 삶을 영위하면서 많은 약속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약속된 사회를 이해하며 그러한 것을 따라서 자신들의 취할 수 있는 기득권을 취하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 사회에 들어가게 되어지는 경우 어떤 특정 단체에 들어가게 되어지는 가운데서는 그 내부적인 세칙이라고 하는 것들 그리고 그 성문화 되어진 것뿐만 아니라 불문율처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들을 마음에 두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쉽게 생각한다면, 약속하면서 살고 약속 속에서 산다고 하는 그러한 것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서로 약속한다고 할 때에 기본적인 것이 시간약속과 장소에 관한 약속이 되어지는 것이 통상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하겠습니다.

이처럼 이러한 것과 같이 오늘 본문에서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어느 때에 임하느냐는 그러한 질문과 어디에 임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말씀하심의 뜻하심을 주목하며 또한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20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22절에서 37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20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님과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는데 하나님 나라는 너희 속에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22절에서 3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그 질문하는 자들의 중심이라고 하는 것의 선함이라고 함을 말할 수 없는 가운데서 주님께서 다시 비유로써 말씀을 이루시고 있는데, ‘너희가 인자의 한 날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하시며 번개의 비침같이 인자의 날이 그와 같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먼저 그가 세대에 버린 바가 될 것에 대한 말씀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어서 주님께서 노아시대의 사람들의 모습과 롯의 시대의 사람의 모습들 그리고 롯의 처를 생각하게 하심의 말씀과 선택과 유기에 대한 말씀을 나타내시고 이에 바리새인들이 그 장소적인 곳을 물음에 대하여서 독수리가 모이는 곳이라는 것으로 답변하심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바리새인들의 질문인 하나님 나라의 임하심의 때와 장소는 그 언약하심의 실체를 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서 구체적인 주님의 답변은 두 가지로써 ‘먼저 인자가 세대에 버린바가 될 것’이라고 하는 것과 ‘독수리가 모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더욱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그러한 구체적인 답변을 말씀하심에 앞서서 그러한 답변에 앞서는 것의 뜻함이라고 하는 것과 그 실제를 마음에 두도록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 번째 본문의 말씀에서 주목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 나라가 저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나라가 임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은 그들과 상관없으면서도 그들을 주장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먼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세상에 시간이라는 것, 세월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것을 주장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시간관념과 그러한 시간 약속이라고 함을 먼저 고려하는 것으로도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그러한 시간의 판단 아래 있으면서도 그 본질적으로 그 시간의 존재와 실존을 주장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에 종속되어지지 않으시면서도 그 시간 속에서 우리 인생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다스리는 하나님나라의 실체는 그렇다고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것을 바르게 알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판단의 정당함에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대적인 시간관의 형태로 나타내셨음에 대하여서 그 상대적인 시간관으로만 판단하려고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함을 먼저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입장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가운데서 그 하나님나라가 그 바리새인들의 중심에는 없지만 그들의 처해있는 곳에는 이미 임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너희들 가운데(among)라는 말에서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주님이 이 세대에 버린 바가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주님을 배척함을 말하는 세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대라는 말은 시대라는 말로써 시간이라는 말과 동일한 어원으로 선택되어져 온 것이 성경의 시대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 시대에 따른 판단을 하고 있다고 할 때에 시간이라는 개념의 자기마음대로 판단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이 세대의 특징이 되어지며 그것이 종말의 때로 하나님나라의 임하시는 때며 이 때의 사람들의 인식에서는 시간이해를 잘못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지 않음이라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판단을 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 즉 시간이해를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가운데서 주님의 뜻하심이라고 하는 것을 주님의 관점에서 보는 그 정당함을 상대화 시키고 그러한 상대화 되어진 주의 뜻하심의 실제가 어디 있느냐는 식의 반발이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시간이해의 자기 마음대로가 이미 정죄 받았음에 대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대인이나 지난 세대나 생각하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임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함은 노아의 시대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산에서 방주를 만들고 있는데 상대적인 판단에서 볼 때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정당함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 세대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음이 그 특징이었고 그러한 가운데서 세월의 상대성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이 세대의 특징이며 오늘날의 특징이며 종말의 때의 특징임을 인식하도록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롯의 모습에서도 사실 롯은 셈족계통이면서도 하나님의 뜻하심 보다는 상대적인 측면의 현실적인 뜻함을 선택했던 자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자신의 목자가 다툴 때에 그 목초지를 고를 때에 하나님과 상관성은 고려하지 않고 보기 좋은 것으로써 실리적 개념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롯의 처의 모습에서도 주목하게 되어지며 그 롯의 영광이었던 처는 그 상대적인 현실적 개념의 관점을 부여하는 것들을 주목하였고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즉 살고자 하는 것은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고 함은 살려고 주체적인 관점을 그 정당함 없이 생각하고 주장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까지도 상대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주관적 입장을 말하는 단계에서 그 자신의 실존을 말하지 못하는 자리에 설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듣고 있던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통상적 관점에서의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장소라는 개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들 가운데 임하고 있다는 하나님 나라의 실존에 대한 말씀을 마음에 두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음과 그 판단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 대하여서 그들의 실존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되었다고 함을 말씀하심이 독수리가 모인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즉 주검을 치우는 독수리의 본성과 같이 그것이 종말론에서 대두되었던 그 말씀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으로 답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나를 들으라”(사 46:11~12)

말씀을 맺습니다.

요즘의 현대 신학이라고 하는 것이 시간이라고 하는 인식을 임의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역사적 시간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의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정당화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너무 고집하는 가운데서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의심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태양이 머물렀던 것에 대한 초자연적인 것이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나타난 신성이라고 함을 상식으로 납득되어질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악한 세대 하나님의 주권적 자기 정당함 속에서 말씀하심에 있어서는 이러한 앞선 판단에서의 시대적 분별을 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하나님나라에 대한 증거를 하고 있으니 참 바리새인들의 모습들로서 이 세대에서도 예수님이 버림받으며 그러한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의 모습도 세상에서 이상하게 보이는 것과 같이 보여지니.. 참으로 종말의 때로써 하나님의 판단하심의 합당함을 말하게 됩니다.

이러한 세대 예수님을 구주로 받지 못하는 변명하는 세대 시간과 세월이라고 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또는 임의적으로 말하여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왕이 없는 세대에서도 주님의 구원하심의 증거는 하나님의 자존적 절대 정당함에 따른 것이라고 함에서 사실의 실제를 말할 수 있음을 증거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잘 예비하는 종들이 되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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