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11일 소망교회 수요예배설교
행19:1-10
두란노 서원에서
우리가 삶 속에서 어떤 재량권을 가진다고 하여도 그것에 있어서의 그 범주라고 하는 것을 말해야 하고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회에서 허락되어진 자신의 지위에 맞게 행하고 그러한 것에서 재량권이라고 하는 것이 통하지 그렇지 않은 가운데서는 그 재량권이라고 하는 것이 그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의 당위성을 잃게 되어지면 그것은 용납되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우리 성도들의 재량권이라고 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자유라고 하는 것과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하심에서 정당함을 받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스스로 행할 수 있는 것의 믿음의 증거를 보게 되어지는데 그 뜻하심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면 본문 1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는데 그곳에서 그 요한의 제자들과의 담론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그들이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것과 그 가운데서 그들에게 예수님을 가르쳐 믿게 함과 이어서 성령의 임하심과 그 표적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바울이 그 회당에서 가르치다가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같이 열 두해 동안 증거하여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음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성령을 받았느냐는 그러한 사도 바울이 질문한 것과 주의 가르침을 받고 성령의 임하심과 그러한 가운데서 표적이 나타났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표적의 증거를 어떻게 받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믿을 때에 또 중생에 관련된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에 중생의 거듭남의 성령을 따로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문이 말씀하시는 바가 아닌 것입니다.
정작 사도바울 자신이 그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 성령의 표적으로 방언을 하였다는 본문의 말씀은 기록되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증거는, 성령 받음이라는 것이 거듭남이란 중생이라는 것의 실체와 관련된 성령의 세례라고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증인들로서의 교회의 일원이 되었음에 대한 증거가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이 열둘이라고 하는 주의 사도들이 성령의 부르심에 따른 사역적인 증거라고 함을 나타내었던 것과 같이 그들의 모임과 동일한 자리에 서게 되어지는 증인의 모습을 갖추게 되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사도들과 사역적 동일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로서의 동일함을 말하는 교회의 일원이 되었음에 대한 증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함은 성령을 들어본 일이 없다고 말하는 그들의 모습에 사도 바울의 전적인 책망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을 나타내지 않았음에는 그 특별한 그들의 연약한 부분의 증거들을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욱 그러한 중심을 가지게 되어지는 것은 그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은 요한의 때의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과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세례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도들로서의 정체성을 가진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함은 또한 하나님 나라는 요한이후에 침노함을 당한다(마 11:12)고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로서 그 나라의 백성이 되어질 것과 그들이 사도들의 증거한 모습과 같이 주의 성도들로서의 증거자들이 되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사도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하나님나라에 대한 증거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요한의 때와 그 때를 지난 가운데서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를 증거하는 그 상관성이라고 하는 것을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에 따라 그 실체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합리적인 자기 증거이면서도 하나님의 주권적 자기 정당함을 가진 불연속성이 연속성의 실체로서 나타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두란노(Tuvranno")(sovereign)의 뜻은 ‘폭군’이라는 뜻도 있지만 ‘주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상대적인 당사자적인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방성이 있는 주권이라고 함에 있어서도 상대적인 판단이라고 함을 넘어서는 절대의 자신의 절대 정당함으로써 상대적인 표현의 실제를 말함에 있어서는 그 폭군이라는 판단의 실제가 사실화 될 수 없는, 기각되어지는 것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절대자가 자기 절대 정당함으로 그 상대적인 것의 실제를 인치는 것으로 나타날 때에 상대적인 것이면서도 그 상대적인 것은 절대적인 것으로써의 자리매김이 타당성을 입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에베소의 회당에서 가르칠 때에 요한의 세대와 그 세대의 증거적 사실로서의 메시아 예수그리스도의 세대의 차이라는 그 상대적 실체의 이분성이는 개념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권적 자기 정당함을 가지고 그것들의 상관성을 말함에 있어서 그 정당함의 실제를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나라의 법적 질서의 하나이며 예수께서 증거하신 천국복음의 내용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의 증거가 바로 지역적인 이름의 증거적 사실로서 나타나고 있는 두란로 서원에서의 가르침과 증거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에베소의 뜻은 허락하다(permitted) 인가하다는 뜻을 가진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주권적(sovereign)인 개념을 말하는 두란노 서원은 자존하시는 하나님의 자기 절대 정당함 안에서 주권적 사역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선포되어지고 그 결실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요한의 때부터 침노당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기에 부적절한 상대적인 판단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절대 자기 신실하심의 받으심으로 그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 아들이시며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서 하나님나라의 기업을 얻게 되어지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허락되어진 주권적 사역은 주의 자존하신 절대자의 자기 절대 정당함에 따른, 그 은혜 받지 못할 자들이, 은혜를 받게 되어지는 놀라운 하나님나라의 법적 질서를 통해 나타남을 기억하고 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그 나라의 기업을 얻게 되어지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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