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9월 13, 2004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이라

2004년 9월 12일 소망교회 주일낮예배설교
눅19:28-48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이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써 생활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어떤 통보되어진 사실들 특히 납득되어야 할 사실들에 대하여서 간혹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상생활에서 납부하게 되어지는 고지서의 기한이라든지, 그 사회에서 주어지는 의무를 행하여야 하는 각종 사항들을 알리는 기간을 잊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전혀 그러한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바쁜 가운데서 우선순위라는 개념에서 일을 처리하는 가운데서 그렇게 마음을 두지 못하는 가운데서 잊게 되어지는 경우도 간혹 있게 되어진다고 하겠습니다.

더욱더 바쁜 세상에서 살게 되어지는 가운데서, 인지상정적인 개념에서 본다면 그럴 수도 있는 당위성이 있지만, 그것이 사람의 죽는 혹은 살아간다는 것과 같은 그 존재에 관한 것이라고 하면 간과와 그것으로 인한 망각이라고 하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본다는 사람의 관점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적인 것인가 하는 것의 옳고 그름이라고 하는 것이 전제되었을 때에 더욱 그러한 판단의 사실을 놓고 안타까움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연민으로써 세상에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권고 받는 날을 알지 못하고 지나고 있는 자들에 대한 것임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28절에서 40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41절에서 44절까지의 말씀 그리고 본문 45절에서 48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28절에서 40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삭개오와의 대화와 축복하심과 ‘열 므나’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마치시고 이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심과 주께서 감람원이라는 산의 벳바게에 이르러 제자 둘을 보내시며 맞은편에서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를 풀어오라고 하심과 그 가져온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임성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 보내심을 받은 자들의 순종과 그들의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입성을 찬송하는데 바리새인들이 책망할 것을 주님께 요구함에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바의 예언된 말씀(합 2:11)으로 답변하심이 기록되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41절에서 44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심과 그 증거의 말씀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권고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45절에서 48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주님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깨끗케 하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그곳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주의 전이 기도하는 곳이라고 함을 말씀하시면서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음에 대한 책망을 하심이 기록되어 있고, 백성들의 두목들은 주님을 죽이려고 꾀하나 백성들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임에 그들이 어찌할 수 없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권고하시는 날을 사람들이 모른다고 말씀하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의 권고하심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사람들이 그것을 간과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성립되어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서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서의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할 것에 대한 것과 19장에서는 삭개오의 구원이라고 함을 말씀하심에 있어서 인생의 구원을 말씀하시는데 그러한 절대적 왕적 권세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들이 자존의 절대자 자신으로서의 예수님 앞에서 심판받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서 주목되어지는 것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그것은 주의 예언하신 바대로 메시아께서 나귀를 타실 것에 대한 것을 이루심을 나타내시고 있고 그 보내심을 받은 자들의 찬송이 기록되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눅 19:38)

이 찬송은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날에 천사들의 찬송에 대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찬송에 대한 것을 주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어떻게 인식하게 되며 증거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주목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한 자로서의 증거자였던 스데반은 천사의 전한 율법을 지키지 않았음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행 7:53) 그리고 그 천사가 전한다는 그 자체만의 의미가 비로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함을 사도 바울이 또한 증거하고 있습니다.(갈 1:8)

예수님의 탄생하심의 증거와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주의 사도들의 증거라고 함이 임의적 천사들의 증거라는 상대적 여지의 판단이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비로소 판단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에 천사들의 찬송과 같이 주님을 영접하며 주님과 함께하는 자들이 찬송을 부르며 주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이 본문의 말씀이 오늘 본문 38절의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며 그 말씀을 실천하며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그 행함은 스데반이 말하는 천사의 전한 율법이라고 함의 실제적인 순종이라고 함을 주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구약에서 시편에서 증거되어지고 예언되어진 것입니다.(시 118: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이가 바로 예수그리스도 자신이심을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 자존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시며 그 자신으로서의 사실을 말함에 그 절대의 정당한 사실임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상대적인 여지라는 개념으로 해석하고 있는 자들의 모습에서는 항상 그 확실성을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그 받아들임의 우선순위의 기본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증거의 사실을 말씀하시는 권고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권고하신 날 자체를 알지 못함이라고 함의 실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는 그 자신의 표현들이라고 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그것을 납득시키려고 하는 의도라는 것은 자신의 존재와 관련되어지고 있다고 할 때에 임의적은 것으로 자신의 유익을 착복하는 가운데 강도의 입장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증거적인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임의적인 것 사실인지 모르는 것을 함부로 말하며 그것으로 자신의 유익을 취하는 자들로써 강도의 집단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천사들의 예수그리스도의 나심과 구원의 증거와 그 구주의 가르침으로부터 정당한 사실을 증거하는 성도들의 모습에서는 그 증거의 능력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 주의 택한 백성들은 그들을 통하여서 주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형이상학적인 개념 현실적인 실제의 예외적이고 초현실적인 개념에서 하나님을 말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임의적으로 말하거나 막연한 이상향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도덕적인 것을 행함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고 함을 말할 수도 없고 말하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들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들의 말에는 자체적 정당함이 없고 항상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즉 그 당위성을 강도짓 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벗어나서 망각 속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사실이 되는 것입니다. 자존의 하나님이 자존의 절대 정당함으로 자신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가운데서의 구원은 상대적 여지가 있다는 차원에서의 한 언급이라는 판단을 비로소 받는 것이 아니라 자존의 절대적 정당함의 인(印)쳐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권고하심의 실제를 받아들이시는 가운데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가운데 증거자로 세움을 받은 자들의 증거하는 모습과 같이, 세상이 평안하다 평안하다고하는 살기 좋다고 하는 생각에만 임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들에게 주의 구원하심과 심판하심이 나타나고 있을 때에, 주와 함께하시며 주의 권고하심을 받으며 그에 따라 보내심을 받은 자들로서의 귀한 종들로서의 사역을 잘 감당하시며 잘했다 칭찬하시는 자리에 서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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