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7일 소망교회 새벽예배설교
사27:1-13
하나님은 포도원지기가 되심이시라
사27:1-13
하나님은 포도원지기가 되심이시라
번화한 시내가 아닌 시골 초등학교에는 학교 내에 작은 정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한 세대 전에는 ‘아주까리’라는 식물을 밭과 같이 재배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방과 후에 친구들과 함께 그곳에 떨어진 가지들이나 바람에 날려 들어온 것들을 주워서 소각장에 버리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한 포도원에 대한 지기로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포도원은 주님께서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심과 동일한 언급에서 주목되어지는데 그 말씀하심의 뜻하심을 주목하며 또한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7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 그리고 본문 12절에서 13절까지의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그날이라고 함의 종말에 있게 되어지는 말씀을 하시는데 1절에서는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실 것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에 주의 백성 된 자들이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할 것과 하나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되심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포도원에 노함이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후일에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그 결실로 지면에 채울 것에 대하여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7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주께서 적당히 주의 백성을 견책하심과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함을 얻을 결과로 인함인데, 그것은 아세라와 태양상(incense altar, sun-pillar)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음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견고한 성읍은 적막하고 송아지가 거기 먹고 누우며 그 나뭇가지를 먹어없이할 것과 가지가 마르면 꺾이는데 여인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자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실 것과 은혜를 베풀지 않으실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12절과 13절의 말씀에서는 주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날에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시내까지 과실을 떠는 것과 같이 그들을 일일이 모으실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땅에서 파멸케 된 자와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할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 23장 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하시고 있고 이어서 24장에서는 대 환란에 대한 예언을 하시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이름의 실재적 기반에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되어짐을 기도하는 자들의 모습으로써의 교회의 모습이 예언되어지고 있고 그 환란이라고 하는 것이 해와 달의 소임이 부끄러움을 말하는 악한 세대에서 비롯되어지는 환란이라고 함을 말하고 있는 것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종말의 때에 야곱의 족속이 속함을 받는 다는 것이(9절), 자격 없는 자들이 들어감이 가히 침범하는 것으로 현실적인실제의 판단을 받지만 하나님으로부터의 믿음을 통한 재가라는 차원에서 합당한 천국에 들어감이, ‘하나님나라는 침노함을 당한다’(마 11:12)고 하신 말씀과 유비되어지며 특히 주님이 비유하신 포도원비유(눅 13:6~9), 포도원주인에게 간구하는 일하는 자로서의 모습을 말씀하시는 분의 언급(3절), 여기서 정황적인 일상적 예를 들면서도 구약의 말씀하신 바와 관련되어진 오히려 그러한 것이 일상적인 것에서의 핑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함을 말씀하시는 것을 주목합니다. 이것은 상황 신학적 개념의 정황적 타당성 요구라고 함이 이미 부인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게 되어지며 아세라와 태양상(incense altar, sun-pillar)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이것이 주의 구속하심의 관건적인 증거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사 27:9)
이것은 아세라 상과 태양상은 모두 가나안 족속의 신상들이며 이미 그들이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는 존재들로써 부정되어진 존재들입니다. 특히 아세라는 풍요에 대한 신의 의미로써 물질적 개념만으로써의 실재관을 주장하며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전제와 사상을 말하는 것이며 태양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시와 연한을 이루라고 하신 태양의 시간이라고 함을 임의적으로 말하는 자들의 중심과 사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즉 시간관 역사관이라고 하는 것을 임의적으로 말해서 역사를 왜곡하고 그리고 예수님의 역사적 자기 계시라고 함의 실존의 확실성을 어디서 찾겠느냐는 반문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리에 서고자 하는 자들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오래되어진 사람들의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이러한 것에 대하여서 자존의 하나님의 절대 자기 정당함으로 상대적으로도 절대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으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고 증거할 때에 그러한 상대적이라는 개념의 부인이라고 함의 판단을 넘어서서 예수님의 구주이심에 대한 정당함에 따른 사실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아세라와 태양상(incense altar, sun-pillar)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다’라고 말씀하심을 받드는 것임을 주목합니다.
더욱 그들의 모습은 즉 물질적인 실재관과 그에 따른 실제관, 그리고 역사인식의 임의적 판단과 규정에 따른 역사적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을 부인하는 자들의 모습은 역시 상대적인 보편적 당위성만 있을 뿐이기 때문에 절대의 재가를 받고 자기 정당함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하심과 구원하심을 마음에 두지 않는 가운데서는 그들의 그러한 증거가 사실의 실존을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그들의 지각이 없으므로 은혜를 베푸심을 받지 못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존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신들의 존재와 증거의 사실의 정당함을 말하지 못하고 있고 그렇게 행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운데서 합당한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서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엡 5:16, 골 4:5) 이것은 시간관념에 대한 정당한 이해가 없이는 그 실제를 알지 못하며 그 말씀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인터넷이라는 매체에서 느끼는 시간관과 현실적인 시간관의 차이라고 함은 많은 사회적 충격을 낳고 있고 우리의 일상적인 시간인식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는 보수적 입장은 그 시간이라고 함을 우상화 시키는 자리에 넘어지게 되고 또한 임의적인 시간 개념을 도입해서 일상적인 시간을 비판하며 일상적인 역사 속에 자신을 계시하신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에 대한 것을 비판하는 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역시 태양 기둥이라고 표현되어지는 태양상(incense altar, sun-pillar)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들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금기행위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로서 분별 있게 행함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하심 안에서 재가가 있게 되어지는 일상적인 역사적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가 진정으로 이러한 우상에서 벗어나며 간교한 뱀의 죄의 유혹을 벗어나며 하나님의 약속의 정당함을 믿는 자들로서 야곱의 택하신 반열, 아브라함과 야곱의 하나님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세계의 시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시간에 대한 정당성 시비와 일상적인 우리의 시간과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동행하시는 가운데서 세월을 아끼며 시대를 분별하시는 종들로써 자존의 하나님께 세세토록 경배하시게 되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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