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19일 소망교회 주일저녁예배설교
출33:1-23
은혜 받은 증거의 실상
출33:1-23
은혜 받은 증거의 실상
사람들은 하나님께 은혜 받았다고 하는 성도들에게 그 은혜를 받은 것의 증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은혜 받은 증거적인 사실을 말해보라는 것입니다. 더욱 요즘에 나타나고 있는 이단으로써 속칭 ‘구원파’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느냐는 질문에서 그 증거적인 것에 대한 회의를 가지도록하며 자신들의 합리성을 따라야한다는 것으로 일관하며 미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한 회의적 질문과 달리, 이러한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증거에 대한 것을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고 있는가 하는 것을 주목하게 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은혜의 증거가 모세의 중보적인 기도의 내용 속에서 증거되어짐을 주목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2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본문 1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백성들의 송아지 우상을 만든 후에 하나님의 심판하심이 있었고 그러한 후에 이어지는 본문의 말씀으로써,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에, 그의 자손과 함께 그 땅에 올라가라고 하심과 하나님께서는 그 목이 곧은 백성과 함께 올라가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단장품을 제한 것에 대한 것과 모세가 회막을 세움과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남에 대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2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모세의 중보적인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응답하심이 친구와 대화하는 것과 같은 모습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중보적인 기도의 내용이라고 하는 것은 모세 자신이 하나님께 은총을 입었으면 주의 백성을 인도할 길을 보이시며 주를 알리고 주의 목전에서 이 이스라엘 백성,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은혜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 것인지 반문하는 가운데서,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임을 기억하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모세가 하나님의 뒷모습만 볼 수 있도록 하시는 그러한 은혜를 입으며 또한 주의 얼굴은 보지 못함에 대한 것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보고 살자가 없음에 대한 말씀하심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시간 속에 나타내시면서도 그 시간의 실제적 판단을 받지 않으시며 그러한 가운데서 삼위하나님의 뜻하심의 증거를 나타내심을 주목하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 사실의 확실성이라고 함을 자존의 하나님의 증거적 실제에서 나타내심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의 실제라는 사실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출 33:16) 하는 것을 말씀하심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것은 메시아적 영광을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상대적인 모습으로 증거하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예수님에 대한 실제적 증거자로서의 예표적 실제의 인물입니다.(신 18:15: 행 7:37) 그러한 사역의 구별적 입장에서 성부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뜻하심이 자신의 신실하심이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는 것으로써의 모습을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주목되어지는 것은 ‘은혜의 실제라는 사실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출 33:16) 하는 것을 말씀하심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출 33:16)
이러한 말씀에 이어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증거적인 말씀은 19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9)
자존의 하나님의 이름을 반포하심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즉 자존의 하나님을 증거할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 자존의 하나님의 증거를 받는 자들은 그 은혜 줄자로서의 예정하신 은혜의 자리에 설 것을 말씀하심이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푼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받지 못하였던 자들의 모습의 전형적인 자들로서는 함의 족속의 정체성을 가지는 애굽족속인데 그 애굽의 바로 왕은 하나님의 이름을 반포하는 자리에서 이러한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 5:2)
자존의 하나님의 자기 증거적 절대 정당함을 가지고 자신의 백성을 보낸다는 모세의 증거를 애굽왕 바로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면서 상대적인 측면에서 현실적인 실제의 자신의 기득권이라고 함을 주장하는 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받지 못함이 바로 은혜의 실제의 자리에 서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은혜의 사실과 그 증거로서 은혜를 입은 줄 알지 못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단 단체인 소위 ‘여호와 증인들’의 모습은 여호와 하나님 야훼하나님에 대한 언급을 말하면서도 그 모세가 증거하였던 것과 같이 그 이름의 증거 즉 자존의 절대자의 자기 정당함에서 말씀하시고 있음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믿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 자신이심을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들의 모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위 한국에서 생성된 이단으로써 구원파의 모습은 구원받은 증거라고 함의 현실적인 실제의 사실들을 합리성 자체에서 비로소 정당성 시비를 행하고 있고 그들의 임의적 합리성에서 파생되어지는 것을 타당성이 있는 것과 같이 말하고 있는 모습은 자존의 하나님의 자기 정당함을 따르는 가운데서의 실존을 말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 말의 정체성은 상대적 보편을 따르는 것의 판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억하게 되어지는 것은 주의 영광을 나타내며(18절) 주의 은혜를 입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반포하는 가운데서 알게 하심의 은혜를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맹목적으로 사칭하는 가운데서 자신들이 증인이라고 하는 거짓을 넘어서서 참되게 그 이름의 뜻으로써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가 자기 절대 정당함으로써 말씀하심에 비로소 정당함을 찾고 그 가운데서의 우리의 삶과 증거의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합리성에서부터 비로소 그 정당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존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어지는 가운데서 실제의식을 찾는 자들이 하나님의 예정하신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자리에 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합리성 자체보다도 예수님을 믿는 것에서 우리의 실존의 정당함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당한 자의 사실을 말하는 가운데서 합당하게 합리성을 찾아서 주의 구원하심을 증거해야 할 것을 말씀하심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을 알며 그 기쁨과 감사로써 산제사를 드리는 자들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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