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34:1-17
새로 만든 십계명 돌판
일반적인 경우에서 말한다고 할 때에 새롭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가운데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하나의 개체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차이라는 것은 상관성을 전혀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이질적인 것으로도 표현되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물리적인 변화나 화학적인 변화와 같은 것이 그러한 예가 되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모세에게 돌판을 새롭게 만들어서 올라오라고 하시는 가운데서 말씀하시고 또한 언약을 세우심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 말씀하심 안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목하며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0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고 하시면서 그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하나님 자신이 그 판에 쓰실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 여호와이심 반포하심과 그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심을 말함에 있어서 모세의 은혜를 구하는 것과 그것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주의 기업으로 삼으시기를 구하고 있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0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여호와께서 자신이 언약을 세우심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삼가 모세와 그 백성들이 들어가는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그것이 올무가 되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지 말며 신상을 부어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새롭다는 개념이 상대적인 차이와 상관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질적이라는 개념으로 규정되어진 것이 아니라 자존의 하나님께서 새로 만들게 하심에서 그리고 그 전에 쓰여진 말들을 쓰시겠다고 하심에서 보는 것과 같이 새로운 돌판에 동일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새롭다는 것을 말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돌판이라고 함에 쓰여진 율법들은 행위를 요구하는 것들로써의 그 정체성을 가지는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이라고 함을 인하여서 그 돌판이 깨어지고 다시 새로운 돌판에 동일한 말씀을 쓰신다는 것은 새로운 율법이라고 함이 전에 쓰인 것과 동일하면서도 새로움을 말하게 되어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게 되어지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을 세우심이라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 언급되어지며 주 안에서 주어지는 새로운 율법이라는 것이 상대적 이질감의 언약적 내용이 아니면서도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에 따른 새로운 언약으로 언급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신구약의 불연속성이라고 하는 개념의 모습과 같은 것을 상대적 합리성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존의 하나님의 정당함을 따른 연속성으로써 언급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모세가 돌판을 깎아 올라오도록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전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초자연적 역사하심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지만 그러한 것을 기준으로 하시면서도 이제는 성도들의 섬김에 따른 형태의 초자연적 역사하심을 나타내실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약 새 언약은 신구약 동일한 언약으로써 구별되어지는 새로운 언약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 있어서 상대적인 개념의 합리성을 의지하지 않도록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반포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자존의 하나님으로서, 상대적인 개념의 판단으로 존재판단을 함으로 있게 되어지는 상대적 존재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존을 파괴하는 자로 나서는 분이 아니시며, 그러한 것이 자존의 절대 정당함을 따르는 것인데, 그것이 인자의 천대까지 베푸심과 악에 대한 삼사 대 손에 대한 보응으로 자존의 절대 신실하심과 그에 따른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도록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삼가서 들어가는 곳에 사람들과 언약을 맺지 않도록 하심과 그 땅의 신상을 부어 만들지 말라고 하심을 기억합니다.
사회계약설을 굳이 말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사회는 언약과 약속이라는 가운데서의 질서적 삶을 유지하는 곳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지 못한 약속의 실존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러한 것에 분별없이 약속을 행하다가 그것이 올무가 되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존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다른 상대적인 신들의 존재적 정당함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다시 신론을 고쳐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무성(nothingness)이라는 개념에서 또는 비존재(non-being)라는 개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는 가공되어진 신론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상들에서 만들어진 신관에 많은 이들이 진정한 개혁신앙이 있는 것과 같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참으로 오늘날의 사람들은 신구약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 다른 말씀들로써 나타나고 있고 그 불일치로 성경의 모순을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과 같이 출애굽기 34장에서 이후로 나타나고 있는 말씀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의 십계명을 받는 것이 반복되어지는 가운데서 동일한 앞선 계시의 말씀과 비교되어지는 말씀이 계속 진행되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때에 진정으로 신구약 성경이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적인 합리성이라고 함을 따라서 비로소 정당하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존의 절대자께서 자신의 이름에 나타나는 자존의 절대 정당함에서 비로소 합리성의 정당함을 따른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자존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서, 주 예수께서 새 언약(눅 22:20)을 세우신다고 말씀하실 때에 자존의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언약을 세우심(출 34:10)에 대한 것으로써 그 실제성을 나타내시며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심을 말씀하시고 있음을 기쁘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가운데서 주의 자녀된 자들로서의 기쁨과 감사가 항상 함께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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