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월 24, 2005

성령으로 된 것이라

2005년 1월 23일 소망교회 주일낮예배설교
마1:1-25
성령으로 된 것이라

사람들은 어떤 것에 대하여서 ‘사실이다’는 말을 하게 될 때에는 상대적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는 차이가 있어도 납득의 당위성이 확보 또는 요구되어질 때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진 ‘사실’이라는 개념이 상대적으로 다른 여지도 있다고 함에 대하여서 생각하여야 할 것이며 그러한 임의적 인식 외에도 사실에 대한 합당한 규정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여지는 남겨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임의적인 표현이면서도 자존의 절대자께서 ‘사실’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면 그것은 그 거룩함에서 하나님의 자존적 절대 정당함을 입어서 상대적 여지라는 개념의 요청적 판단을 받지 않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라고 함을 합당하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증거를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8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를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서 예수님의 나심에 대한 족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8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한 정황에 대하여서 말씀하시고 있는데, 요셉이 하나님의 예언하신 말씀대로 동정녀 마리아의 정혼한 요셉과 동거 전에 잉태한 사실이 드러나서 가만히 끊고자 하였으나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함을 말씀하시며 아들은 자기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함을 말씀하시며 이사야 7장 14절의 말씀하심과 같이 되어진 것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에 요셉이, 마리아가 아기를 낳으매 주의 천사가 이름과 같이,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하심과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함의 주의 천사를 통한 증거의 의미와 사실에 대한 증거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함에 있어서,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세계’라는 말은 헬라어로서는 ‘게네시스’라는 말로써 영어로 번역되어지는 것은 ‘세대’(generation)라는 말로 표현되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대라는 말은 그 사람들의 실존과 그들의 삶이라고 함의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들의 향유하게 된 세계를 의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시간이라고 함이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함을 말씀하심으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칭함을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사 9:6)의 통치하심이 비로소 지금 출생에서 시작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시고 있고 시간이라는 개념을 넘어서는 자신의 속성으로써의 영원 전부터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통치하심이 태초부터 즉 시간의 창조부터 시작해서 주장하시는 가운데 주의 기뻐하시는 자들을 선택하셔서 자신의 뜻하심을 혈육의 자들의 모습과 삶과 그들의 시간 속에 영광을 나타내시며 종말로써 아들 자신의 보내심을 말씀하신다는 것으로 받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영원’이라는 그 말 ‘올람’(전 3:11)이라는 말이 시간의 의미 세월의 의미 즉 시대를 말하는 것으로써 구약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것은 신약에서는 ‘세대’(generation)라는 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기 속성적 표현으로써의 상대적 시간을 말씀하심으로 받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하심에 있어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영, 하나님의 영이 창조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과 자존의 절대자의 영 자신으로써의 자존적 정당함으로 실제적 계시를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기를 낳기 전에 그 아이에 대한 ‘태몽(胎夢)’을 말하고 있는데, 본문에서는 요셉이 꿈에서 지시를 받는 것과 그러한 가운데서의 현실적인 실천적인 행동을 말하고 있는데 그러한 비교되어짐에서 유사한 개념으로 동일한 범주로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함은 자존의 절대자께서 절대 정당함으로써의 사실을 말씀하심에 그 사실의 실존이, 개연적인 소원의 반영으로써의 마음의 허상(虛想)적인 실제라는 것과 달리, 참된 사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실의 실존과 납득의 당위성이 절대자의 절대 자기 정당함에 따른 인(印)쳐진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인(印)쳐짐의 상대적인 표현으로써는 주의 이미 예정하심에 따른 예언적 증거로서의 이사야의 증거가 그 예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예수께서 시간을 창조하시기 전 자신의 자존의 절대자로서의 속성적 영원을 가지신 것에서 시간을 주관하심의 세대를 말씀하심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과 같이 그러한 시간적 순서적인 것에 메이지 않으시면서도 그것을 주장하셨던 분으로써 자신이 성령 하나님 자신이심을 또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주장하시는 하나님 자존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실 때에 제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성경을 깨닫게 하심으로서 주님께서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저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라고 하셨던 것과 같이 자신이 성령자신이심을 받도록 하셨던 것입니다.(눅24:, 눅24:32, 45)

말씀을 맺습니다.

사람들은 태몽(胎夢)이라고 함을 말함으로써 아이에 대한 소망이라고 하는 그 마음이나 또는 아이의 어떻게 되어질 것에 대한 심리적 표현을 기뻐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것은 객관성을 결여한 가운데서 개연적 희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써 그 확실성과 사실을 받아야 하는 당위성은 실제적으로 요구되어지는 경우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경우로써만 본다면 예수님의 탄생은 어떤 개연적 경이로움만 있지 사실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일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정욕적으로 비난하려고 하는 자들이나 잘못된 신들의 임재라는 개념의 하나로써 사실로 받을 수 없어 설화적 개념으로 임의적 사실로 말하여서 납득 당위성을 가짐에 대한 잘못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있을 수 있다는 것과 정당하다는 것은 역시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서 그들은 입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자존의 하나님 자신으로써의 성령께서 상대적으로도 거룩하게 하신 가운데서 예수님 자신의 자기계시라고 하심을 말할 때에 주 예수님의 탄생이라고 하는 것은 참된 사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구주이신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현실적인 판단을 받지 않으시며 우리 성도들과 동행하시며 주께서 다시 만인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다시 오신다고 하심과 그것을 이루실 때에 주의 구원하심의 이미 이루어짐이 완전해지며 성도들이 주의 영광의 구원과 그 나라를 상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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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