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10월 18, 2004

예수님께 듣는 종말의 징조

2004년 10월 17일 소망교회 주일낮예배설교
눅21:20-38
예수님께 듣는 종말의 징조

‘징조’라는 것은 ‘어떤 일이 생길 기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기미’라는 뜻은 ‘생각의 지향성이나 취미 따위가 일치하거나 가까워서 은연중에 서로 이해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합해보면 ‘어떤 일이 생길 것에 대하여서 관계되어지는 생각의 지향성과 같은 것이 일치하거나 가까워서 은연중에 이해되어질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의 지향성이라고 함에 대한 인식이 어떤 획일적 개념이 아니라고 할 때에 상대적 다양성이라고 함이 또한 여러 가지 생각으로 인해 혼란을 가져오게 되어지는 경우가 수반되어지는 가운데서 짐작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러한 것에 대한 사실을 어떻게 말하는가 또는 말하지 못한다면 임의적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여러 가지 징조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징조가 말하는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라면 그 해석자들에게 있어서 그리고 그것을 듣는 자들에게 있어서 고통이 되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에 대하여서 주목하며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20절에서 28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29절에서 33절까지의 말씀 그리고 본문 34절에서 38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20절에서 28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고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찌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이 날은 형벌의 날임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아이 벤 자와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음과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잡혀갈 것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고 이방인들에게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밟힐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을 것이고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할 것을 말씀하시며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할 것을 말씀하시는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타고 오심을 볼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이런 일이 있으면 구속이 가까웠음에 대한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29절에서 33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무화과 비유와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움에 대한 것을 알도록 말씀하시고 있으며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이룰 것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진다고 하여도 없어지지 않을 것에 대한 말씀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34절에서 38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스스로 조심할 것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이 종말의 날이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심과 밤이면 감람원에서 쉬심에 따라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감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누가복음 21장 1절에서 19절의 말씀에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이라고 함을 기억하면서 종말에 대한 징조를 구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말씀하심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나심과 다시 오심에 대한 시대의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 교회의 시대를 말씀하심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과 그 실제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그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곤고한 자리에 있게 되어지는 것을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말씀하심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의 타락에 있어서 즉각적으로 있게 되어지는 것으로써 구약적인 교회의 시대를 포함해서 주님께서 성육신하신 가운데서의 공식적인 실제의 모습까지 포함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심을 말씀하심은 이사야와 미가의 예언의 말씀을 따를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미가와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던 것입니다.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미 4:2)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3)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하심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 기득권적인 자신들의 성에서 나올 것과 또한 그러한 아집적인 주관적 실제를 가지고 자랑하지 말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하심 안에서가 아닌 잘못된 교훈으로 사람을 낳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을 말씀하심이 아이 벤 자의 받을 화를 말씀하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하심 안에서의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는 진정으로 거짓된 정당함에 따른 사실들에 대하여서 곤고한 모습을 취하는 가운데서 이방인에게 밟히는 수모를 겪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왕하 18:26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의 인식을 비교할 것)

일월성신 징조에 대한 말씀하심과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할 것과 같은 그리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에 대한 것을 말씀하심은 시대를 분별하여야 할 것을 말씀하심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구약에서는 ‘시대’라는 말과 ‘시간’이라는 말의 같이 사용되어지는 가운데서 그 증거적인 언어적 표현이 있었습니다. 즉 세대를 분별하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세월을 아끼라고 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시간이라고 함에 대한 사실의 근거를 분별하는 것과 같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시간이라는 것은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이는 하나님이 창세 때에 정하신 질서의 한 표본이며 그로 인한 인식인 것입니다. 그러한 것과 같이 하늘의 별들로써 위성으로써의 태양과 각종 천문적인 별들은 시간과 상관성이 있음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무의식적으로도 인식해왔습니다. 즉 그러한 것이 점성술과 같은 역사초기와 오늘날의 무속신앙으로 변질되어지고 있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성육신하심을 알리실 때에 이미 예정하신 가운데서 별을 통하여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은 시간이라고 함 속에 하나님 자신의 계시의 실제를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시는 섭리였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있었고 이것은 주의 천사들의 증거로 더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헤롯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왕이 나심에 대한 혼란과 곤고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또한 유아학살로 인해서 라헬이 위로받기를 거절하게 되어지는 그러한 사태까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징조적 개념으로써 일반적인 범신적인 하늘의 이치라고 하는 것의 정당함만으로 이해되어질 수 없는 가운데서의 혼돈이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게 되어지는 것을 말씀하심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예수께서 그러한 상대적 확실성이라고 함을 의지하지 않는 가운데서의 오심이 구름타고 오심이라고 함을 말씀하심의 의미로 나타나시고 있고 또한 이것은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증거도 함께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구주와 심판자로서 다시 오심에 대한 것을 주목할 때에 구속의 때가 되었음을 말씀하신다고 함을 기억하고 우리의 머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해야 할 것을 말씀하심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리스도이심에 대한 것을 말씀하심이 주의 말씀의 주관적인 것이면서도 절대의 재가가 있는 것임을 말씀하심으로 자신을 증거하시고 있음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하심의 종말적 징조에 대한 해석을 마치시는 가운데서 그것에 대한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말씀하심이 이어지고 있음을 주목하게 되는데 그것은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심과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심이 언급되어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조심한다는 것은 임의적인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통한 주의 형상을 입은 자들로서의 합당히 행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로서의 열매를 맺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아주 평범하게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라고 하시는데 중요한 것은 주님이 기도를 가르쳐주신 것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는 그 첫 번째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구하도록 가르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 자존의 절대자 자존의 절대 정당함으로 상대적인 것으로도 절대적으로 말씀하시는 가운데서의 실재를 분별하는 또한 실제를 증거하는 자리에 서는 자들로서 성도들의 삶의 방향과 의도와 힘씀이 정초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심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종말에 대한 징조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무엇이 진정한 사실인가 그것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복음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주의 은혜로 그 복음이 진정한 사실이라고 함을 알기 전까지는 핍박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의 시간 속에 역사 속에 오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이 하나님 자신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만이 진정한 복음의 사실을 말하게 되어지는 가운데서 자존의 하나님의 성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자존의 절대자의 자기 정당함이 하나님의 이름의 계시인 것입니다. 그 이름을 힘입을 때에 모든 것의 주관적이면서도 진정한 사실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의 상대적 표현이면서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성경을 받으며 그 말씀의 사실성이 하나님의 자존적 절대 정당함에 따른 사실이라 함에 있다고 할 때에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에서는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성전에 나감이 기록된 뜻하심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의 말씀하심을 따르는 가운데서, 징조의 해석에 따른 시간과 세월의 임의적 해석에 따른 혼돈된 가치판단과 주의 말씀을 흐리게 하는 자들의 말들에서 벗어나서, 주의 말씀하심에 따른 사실 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 자신이심을 믿는 자리에 서시는 가운데 주의 구속하심의 은혜의 실제의 자리에 서며 구원의 하나님을 세세토록 찬송하시는 자리에 서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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