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6일 소망교회 수요예배설교
롬13:1-14
빛의 갑옷을 입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일을 할 때에 필요한 적당한 옷을 입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그러한 것에서 좀 전문적인 일을 하게 된다면 단체적인 측면에서 어떤 ‘유니폼’을 입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위한 옷을 입을 때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한번씩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오늘 일과가 시작되는구나.. 그래도 한번 해봐야지.. 살기위한 것인데..’라는 생각들 물론 잘하겠다는 생각과 사명감을 표현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여야하고 표현하여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면 그래도 생명이 있는 동안에 평안한 삶을 위해서 해야지 하면서 일을 위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생명이 있을 동안의 평안’이라는 것은 가히 ‘생명과 평안’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생명과 평안의 복음에 대한 의식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의식되지 않더라도 삶을 통하여 의식하게 되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의 삶을 영위한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자존적 형상을 위한 것으로써의 당위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의 실제는 ‘생명과 평안’의 ‘복음’임을 기억하여야 하고 우리 성도들은 증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롬 1:2)이라고 언급하고 난 다음에, 이러한 ‘생명과 평안이라고 함을 놓고 복음에 대한 언급을 한 것’(롬 8:1~10)을 기억하면서 오늘은 빛으로 갑옷을 입는 것, 그리스도로 옷을 입음에 대하여서 말씀하심을 주목하며 그 뜻하심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1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라고 하심과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며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세를 거스리는 것이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으로 나타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난 후에 선을 행하도록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권세에 대한 의무를 행하면서 두려워할 자와 존경할 자들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에서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하시면서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음과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11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음에 대한 것을 언급하면서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씀하시며 단정함으로 행하고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세 가지 주제로써 ‘권세’와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사랑’과 ‘빛의 갑옷 즉 예수그리스도로 옷을 입음’에 대한 것이 선을 행하는 가운데서 하나의 동일한 뜻하심을 이루게 되어지는 것을 총체적으로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의 성도들이 협력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룰 수 있도록 하심의 축복의 자리에로 초대함의 전반적인 언급을 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권세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현실적인 실제의 모습에서의 하나님의 뜻하심을 나타내는 성도들로서 또한 종들로서의 유대파 성도들과 헬라파 성도들의 정황을 이해하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게 되어지는 것은 로마라는 말은 힘 ‘strength power’로 표현되어지고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권세라는 말로써 ‘엑수시아’도 ‘power strength’로 표현되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로마의 권세라고 하는 것 그 질서적 개념에서 있게 되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정하신 바에서 이루어지는 사실로서의 실제를 가지는 것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고 그러한 정황이라고 함에서 유대파 헬라파 성도들의 신앙윤리적 생활이라고 함을 행함에서 ‘선을 행할 수 있음’에 대한 것을 마음에 두도록 권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로마서 12장의 언급이면서 사실 기독교적 선을 행함에 대한 논의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근본적인 사실이해에 반목에 있음이라고 함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협력하여 선을 이룸이라고 하는 것의 총체적인 사실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심이라는 것이 중심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빚을 지지 말라고 하심에 있어서는 그 앞서 있게 되어지는 믿음의 섬김이라고 하는 것에서 다소 있게 되어지는 불협화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진정한 훼방적 사실이 될 수 없는 것임을 마음에 두며 그것이 사실이라고 함을 기억할 때에 ‘오래 참는 온유하는 사랑’(고전 13:4)을 이루게 되어지는 것임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무엇이 진정한 사실인가 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권세를 말씀하시면서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정하심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얻지 못하는 가운데서는 현실적인 강요의 권세적 입장으로 해할 수 있는 것처럼 나타날 수 있다고 하여도 그 권세의 존재의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권세까지도 성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측면에서 그 특정적 한 부분적 개념에서 언급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자존의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는 것이 진정한 사실이라고 할 때에 죄악의 권세의 자리에서 있게 되어지는 가운데서 신앙윤리적 모습의 사실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시키려고 하는 것에 지지 말고 진정으로 주의 말씀하심 안에서 무엇이 사실인지를 증거하는 사람 즉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하여 사실을 말하는 자들로써 진정한 사실을 분별하는 자리에 이르게 하는 즉 빛을 비추는 자리에 서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권세라는 것의 실존, 신앙의 행함의 사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인식함에 대한 진정한 사실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다시 살아나셔서 자신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주관하시는 분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여호와 하나님 성부 하나님 자신이심의 계시하심에서 자신의 절대 정당함을 가지신 분으로서 그 분 안에서 정당함을 얻을 때에 진정한 사실임을 말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그것을 통하여서 세상에 무엇이 진정한 사실인가를 분별할 수 있도록 우리의 중심을 가지는 것이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며 예수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로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 진정한 사실인지 그리고 그 인내함에 대한 소망이 진정한 사실이라는 것의 확신이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함이라고 하는 것 즉 인내라고 하는 것의 사실을 주장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렇기 때문에 율법이라는 행함을 요구하는 것에 온전히 인내함으로 행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는 그 열매가 그 율법이 지향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존의 성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할 때에 그의 이름으로 세우신 주의 몸된 교회에서 현상적인 협력의 사실들이 믿음의 분량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같은 가운데서 식상할 수밖에 없는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것과 같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정할 때에 주의 절대 신실하심에서 파생된 예정하심의 선하심과 그러한 상대적인 모습에서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하심과 협력하게 하심의 사실을 말할 수 있도록 하심의 뜻하심이 진정한 사실인 줄 알고 진적으로 주의 몸된 교회에서 오래참고 온유하며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가운데서 행할 수 있는 축복의 자리로 나오게 하시는 은혜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사실을 말할 수 있음의 정당함과 주의 자존적 절대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믿으며 주님을 의지하여서 사실을 분별하고 오래참고 온유하며 거짓을 행하시지 않는 가운데 진정으로 빛의 갑옷을 입은 자들로서 예수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들로서 주 앞에 나타나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http://geocities.com/vosscare
설교자
롬13:1-14
빛의 갑옷을 입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일을 할 때에 필요한 적당한 옷을 입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그러한 것에서 좀 전문적인 일을 하게 된다면 단체적인 측면에서 어떤 ‘유니폼’을 입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위한 옷을 입을 때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한번씩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오늘 일과가 시작되는구나.. 그래도 한번 해봐야지.. 살기위한 것인데..’라는 생각들 물론 잘하겠다는 생각과 사명감을 표현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여야하고 표현하여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면 그래도 생명이 있는 동안에 평안한 삶을 위해서 해야지 하면서 일을 위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생명이 있을 동안의 평안’이라는 것은 가히 ‘생명과 평안’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생명과 평안의 복음에 대한 의식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의식되지 않더라도 삶을 통하여 의식하게 되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의 삶을 영위한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자존적 형상을 위한 것으로써의 당위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의 실제는 ‘생명과 평안’의 ‘복음’임을 기억하여야 하고 우리 성도들은 증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롬 1:2)이라고 언급하고 난 다음에, 이러한 ‘생명과 평안이라고 함을 놓고 복음에 대한 언급을 한 것’(롬 8:1~10)을 기억하면서 오늘은 빛으로 갑옷을 입는 것, 그리스도로 옷을 입음에 대하여서 말씀하심을 주목하며 그 뜻하심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1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라고 하심과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며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세를 거스리는 것이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으로 나타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난 후에 선을 행하도록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권세에 대한 의무를 행하면서 두려워할 자와 존경할 자들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에서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하시면서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음과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11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음에 대한 것을 언급하면서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씀하시며 단정함으로 행하고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은 세 가지 주제로써 ‘권세’와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사랑’과 ‘빛의 갑옷 즉 예수그리스도로 옷을 입음’에 대한 것이 선을 행하는 가운데서 하나의 동일한 뜻하심을 이루게 되어지는 것을 총체적으로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의 성도들이 협력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룰 수 있도록 하심의 축복의 자리에로 초대함의 전반적인 언급을 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권세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현실적인 실제의 모습에서의 하나님의 뜻하심을 나타내는 성도들로서 또한 종들로서의 유대파 성도들과 헬라파 성도들의 정황을 이해하고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게 되어지는 것은 로마라는 말은 힘 ‘strength power’로 표현되어지고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권세라는 말로써 ‘엑수시아’도 ‘power strength’로 표현되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로마의 권세라고 하는 것 그 질서적 개념에서 있게 되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정하신 바에서 이루어지는 사실로서의 실제를 가지는 것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고 그러한 정황이라고 함에서 유대파 헬라파 성도들의 신앙윤리적 생활이라고 함을 행함에서 ‘선을 행할 수 있음’에 대한 것을 마음에 두도록 권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로마서 12장의 언급이면서 사실 기독교적 선을 행함에 대한 논의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근본적인 사실이해에 반목에 있음이라고 함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협력하여 선을 이룸이라고 하는 것의 총체적인 사실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심이라는 것이 중심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빚을 지지 말라고 하심에 있어서는 그 앞서 있게 되어지는 믿음의 섬김이라고 하는 것에서 다소 있게 되어지는 불협화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진정한 훼방적 사실이 될 수 없는 것임을 마음에 두며 그것이 사실이라고 함을 기억할 때에 ‘오래 참는 온유하는 사랑’(고전 13:4)을 이루게 되어지는 것임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무엇이 진정한 사실인가 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권세를 말씀하시면서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정하심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얻지 못하는 가운데서는 현실적인 강요의 권세적 입장으로 해할 수 있는 것처럼 나타날 수 있다고 하여도 그 권세의 존재의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권세까지도 성도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측면에서 그 특정적 한 부분적 개념에서 언급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자존의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는 것이 진정한 사실이라고 할 때에 죄악의 권세의 자리에서 있게 되어지는 가운데서 신앙윤리적 모습의 사실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시키려고 하는 것에 지지 말고 진정으로 주의 말씀하심 안에서 무엇이 사실인지를 증거하는 사람 즉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하여 사실을 말하는 자들로써 진정한 사실을 분별하는 자리에 이르게 하는 즉 빛을 비추는 자리에 서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권세라는 것의 실존, 신앙의 행함의 사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인식함에 대한 진정한 사실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다시 살아나셔서 자신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주관하시는 분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여호와 하나님 성부 하나님 자신이심의 계시하심에서 자신의 절대 정당함을 가지신 분으로서 그 분 안에서 정당함을 얻을 때에 진정한 사실임을 말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그것을 통하여서 세상에 무엇이 진정한 사실인가를 분별할 수 있도록 우리의 중심을 가지는 것이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며 예수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로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 진정한 사실인지 그리고 그 인내함에 대한 소망이 진정한 사실이라는 것의 확신이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함이라고 하는 것 즉 인내라고 하는 것의 사실을 주장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렇기 때문에 율법이라는 행함을 요구하는 것에 온전히 인내함으로 행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는 그 열매가 그 율법이 지향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존의 성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할 때에 그의 이름으로 세우신 주의 몸된 교회에서 현상적인 협력의 사실들이 믿음의 분량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같은 가운데서 식상할 수밖에 없는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것과 같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정할 때에 주의 절대 신실하심에서 파생된 예정하심의 선하심과 그러한 상대적인 모습에서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하심과 협력하게 하심의 사실을 말할 수 있도록 하심의 뜻하심이 진정한 사실인 줄 알고 진적으로 주의 몸된 교회에서 오래참고 온유하며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가운데서 행할 수 있는 축복의 자리로 나오게 하시는 은혜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사실을 말할 수 있음의 정당함과 주의 자존적 절대 신실하심을 기억하고 믿으며 주님을 의지하여서 사실을 분별하고 오래참고 온유하며 거짓을 행하시지 않는 가운데 진정으로 빛의 갑옷을 입은 자들로서 예수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들로서 주 앞에 나타나시는 귀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http://geocities.com/voss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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