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4월 04, 2005

사사 옷니엘

2005년 4월 3일 소망교회 주일저녁예배설교
삿3:1-11
사사 옷니엘

사람이 살다 보면, 세월을 의식해야 하는 때가 있고 시기라고 함을 분별하게 되는 인생의 때를 맞이하게 되는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주의 사도들의 증거에서도 ‘때를 분별하라고 하심’(롬 12:2; 엡 5:16)과 같이 그 말씀이 신약시대 그때 비로소 생소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본문 사사기에서도 읽게 되어진다는 점을 말하게 됩니다.

구약에서의 세대라고 함을 말할 때에 ‘도트’를 말하는데 이는 시간의 순환적 개념을 말하게 되어지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라고 하는 것이 자연의 반복적인 것과 비교하여서 순환적 시간관을 말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는 그러한 것으로 세대주의자들의 시대를 나누는 어리석음도 이러한 언어적 개념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뜻하심을 생각하는 잘못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순환적 시간과 그에 따른 세대를 말하는 형식은 그러한 세대를 말하는 형식과 실존이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하심이라고 하는 것이 성례전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서 증거한 내용이 실제적으로 이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함을 분별하도록 하심의 선하심과 사실을 말하기 위하여서 채용되어진 언어임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다고 할 때에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한 세대로서의 옷니엘 사사의 하나님 앞에서의 통치기간에서 증거하는 그 존재적 그들의 시대적 성례전적인 그 증거의 사실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읽어내며 또한 증거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7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알게 하려 하사 열국을 남겨두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이 남겨진 족속과 자신들의 자녀들을 혼인시키고 그들의 신들을 섬겼음에 대한 것을 지적하시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7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들을 섬긴 것과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음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을 세우셔서 그들을 구원하고 그 땅이 태평한 사십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옷니엘 사사를 보내신 주의 뜻하심과 그 앞서 기뻐하신 뜻하심에 마음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사사기에서는 사사를 세우심에 있어서 전반적인 사사의 사역을 말씀하신 2장까지의 말씀을 기억하고 본문에서는 구체적인 사사들의 증거와 정황이라고 함을 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제일 먼저 기억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 전쟁에 대하여서 알지 못함에 대하여서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시기 위한 뜻하심이었습니다.

즉 주의 몸된 교회가 가장 마음에 두어야 할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의 다음세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하심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그러한 일에 더욱 그리고 더 많이 마음을 두고 행하여야 할 것을 앞서 언급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경우는 그 시내산에서 언약을 받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모압지방에서 언약을 그의 다음세대들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중심이 선하였는데 여호수아의 경우에서는 그 백성들의 신앙의 합당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선택하도록 하는 그러한 정도에 그쳤고, 진정으로 그러한 다음 믿음의 세대의 교육이라고 하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그 가르침을 위해서 그들이 청종의 여부를 알기 위해서 이방인들과의 상관관계 속에 있게 되어지는 고통의 자리에 서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청종의 여부를 알기 위하심이라고 함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그의 선하심의 예정하신 가운데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인성적 증거로서 메시아가 오심과 관련되어진 가운데서 본문이 해석되어질 것과 그러한 가운데서 주의 말씀을 받아야 할 것을 마음에 두는 가운데 인성적인 표현으로 경험적 지식의 형식을 선히 취하셔서 ‘청종의 여부를 알기 위하심’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옷니엘의 사사로서의 존재적 사역적 증거라고 함을 기억할 때에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가나안 땅을 취하기 위하여서 벌인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고 하는 것의 전형적인 측면에서의 성례전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오게 되어지는 주의 몸된 교회의 세대들 오고 오는 주의 몸된 교회에 대한 예표적 성례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사들이 아닌 옷니엘이 그 사사의 역할을 맡음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힘이 다음 세대를 붙들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의 말씀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한 세대의 사사일 뿐이면서도 다음세대의 총체적인 하나님의 권능의 재가가 있는 가운데서 주의 몸된 신 구약의 교회가 있을 것을 말씀하심에서 특히 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는 오순절로 인한 주의 몸된 교회의 공식적인 출범이라고 함을 예언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의 몸된 교회가 복음으로 나은 다음 세대를 주의 말씀으로 양육시키는 일에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중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주의 오고 오는 모든 교회는 자존의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의 재가로 지키실 것이라고 함의 소망을 가지게 하심의 은혜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다음세대에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도록 하심의 권고하심과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함을 통하여서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그 소망의 말씀을 마음에 둠이 귀한 은혜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말세의 한 징조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서 증거되어지는 것과 같이 ‘선지자에게 예언하지 말라’(암 2:12)는 말이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선지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성도들이 주의 선지적 형상으로 회복되어지는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 옷을 입은 자로서 주의 복음을 증거함에 그러한 선지적 역할을 하게 되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증거하지 말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믿음의 후손들도 우리가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서 그러한 ‘신앙고백적인 답변을 준비하는 것’(벧전 3:15)이 합당함을 마음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음의 진정한 사실임을 말하게 되어지는 가운데서 참으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구원과 생명과 평안의 사실이 있음을 증거하며 가르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 신앙고백위에 나타나게 될 것이며 그것으로 주의 몸된 교회가 온전히 세워질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마 16:15~18)

이와 같이 참으로 자존하시는 하나님이 자존의 절대 정당함을 가지시고 상대적인 것으로도 절대적인 사실을 말씀하심에 진정한 구원과 사실이 있음을 기억하고 이러한 복음의 사실을 믿고 인내하며 온전히 증거하고 복음으로 낳은 다음세대에 바르게 가르치는 가운데 주님의 길을 온전히 예비하시는 귀한 소망이 사실로 나타나는 그러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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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