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6월 24, 2005

스바냐의 증거

2005년 6월 17일 소망교회 금요철야예배설교
습1:1-6
스바냐의 증거

아름다움으로써의 낭만을 말하게 되는 그러한 문학적 소재로써 사용되어지는 별에 대하여서 말할 때에 그 ‘별(星)’자체의 것을 말하기 보다는 그 별빛에 더욱 의미를 두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별들이 사막에서는 길을 안내하는 것으로 천문학적인 측면을 말하게 되거나 점성적 미신을 말하게 되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시며 아들이신 메시아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별을 사용하여 초자연적 구별적인 뜻하심으로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 무수한 별들이 있다고 하여도 주의 구별적 사실로서의 증거를 나타내게 하심의 정당함을 입은 별이 그 계시를 담당하게 하심을 입었기 때문에 모든 별들이 존재해도 주의 뜻하심의 것은 감추어진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처럼 ‘별이 빛나는 밤’에 주의 뜻하심을 위해 감추어졌던 작은 별과 같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였던 별과 같은 주의 빛을 비추는 자의 모습이 바로 스바냐 선지자의 증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스바냐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숨겨주시는 자’라는 뜻입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2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3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2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스바냐 선지자가 어떤 자인가에 대한 언급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히스기야의 현손이라고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가 증거하는 내용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실 것에 대한 것입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3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진멸하심에 대한 것의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것을 지적하시며 자존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한 것과 찾지도 구하지도 아니하는 자들임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선지자의 소개에서 읽게 되어지는 영적인 뜻하심의 증거와 예수님의 비유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이루는 종들의 모습으로서 신약성도들의 모습의 온전성을 지칭하고 있으며 신구약 성도들의 동일한 성도로서의 옳은 자리에 서도록 말씀하시고 있음을 주목합니다.

선지자의 소개에서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이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이라고 함을 말씀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역사를 주관하는 실체로서의 모습임을 기억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후손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을 증거하였던 것입니다.(사 20:14~18) 이러한 것은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그 행한 일에 대하여서 그 정당함을 찾지 않았던 것이며 그가 아람군대를 물리친 것의 사실이 자존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되어진 사실이라는 것의 정당함을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후에 이러한 히스기야의 후손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모두 잡혀가는 자들로서의 죄악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숨겨두신 자라는 이름의 스바냐를 주목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약이라고 하는 것이 자존의 하나님의 정당함을 입는 가운데서의 판단받는 것임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들이 바르게 증거하지 않고 그들이 상대적인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진정 하나님이름의 실재적 기반에서 판단하는 사실 분별이 없는 때였습니다. 즉 무엇이 진정한 사실인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그러한 때 많은 이들이 현란한 말로 세상의 빛과 같이 비춘다고 할 수 있는 그 때에는 진정한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밤의 의미없는 별들이 되어지고 이들을 추종하는 자들이 있고 그들에게 마음을 두며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아 사실을 말하는 자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현손이면서도 즉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다는 그러한 존재적 정당함을 찾는 그의 이름이 무시되어지는 가운데서의 바벨론 포로가 예정되어진 가운데서 판단되어질 수 있는 사람 중에서의 혈통임을 읽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남겨두시고 숨겨두신 자로서 꼭 엘리야와 같이 자존의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라고 명하고 진정한 사실이 하나님으로부터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바냐가 별과 같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고 있다는 것과 이것은 예수님을 인도하던 그러한 초자연적 구별적 증거로서의 빛을 비추는 자로 세움을 받음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신앙을 증거하였던 것과 같이(왕상 18:39) 이후에 다른 엘리야 세례요한이 와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였던 것과 같이 그처럼 그들은 정황적인 입장에서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암흑속에서의 빛들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새벽별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한 그 증거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에서 우리는 주께서 천국의 비유로 말씀하신 '밭에 감추어 두신 보화'(마 13:44)를 마음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신의 생명과 평안을 위한 책임지기 위한 것으로써 노동을 의지하는데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의 사실을 말씀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었을 때에 예수님을 인한 그 노력을 위한 밭을 전적으로 사는 모습을 읽게 하시는 것입니다. 삶과 고통과 모든 것을 지불하고 찾으려고 했던 것의 진정한 사실이 자존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시며 주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임을 주님의 비유에서 읽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의 인식이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서 주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로서 첫번째가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그 기도인 것입니다. 모든 노동이라고 하는 것과 밭을 가는 것과 같은 삶이라고 하는 것의 사실과 합목적성의 정체성이 진정한 구원과 생명의 사실을 말씀하시는 주님을 믿는 것과 주 안에서 찾을 수 있음을 기억할 때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에서부터 그 정당함을 찾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의 자존적 절대 정당함을 따라서 사실을 분별하라고 하는 것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스바냐서는 이 스바냐 선지의 존재적 자기 증거가 되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감추셨다'는 그 이름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진노의 감추인 자로서 남은 자의 사상으로 이어지는 이것은 하나님 자존의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존의 절대자로 절대 자기 정당함으로써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세상에 피곤한 인생을 가르치는 교훈들은 모두 별처럼 빛나는 것과 같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즉, 수백만광년이 떨어진 곳에서의 별의 빛이라고 하면 이미 사라진 존재로서의 별들의 빛이 수신되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 그러한 많은 교훈을 행하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식으로 생각해서 하나님의 절대적 증거를 상대화하며 사실을 말못하는 그러한 세대 속에서도 우리 성도들은 자존의 절대자로서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안에서는 자신의 절대 자존적 정당함으로서 자신의 백성들을 그의 피로 사시며 소유하시며 그의 형상으로 행하시게 하심으로 믿음으로 사실을 규정하는 권세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예'(고후 1:20)라고 한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와 같이 믿음안에서 진정한 사실을 말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안에서 사실을 분별하여 복음의 사실이 진정한 사실임을 증거하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기도하는 종들로서의 합당한 증인들이 되시며, '사람들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들로서 별과 같이 주 앞에서 빛나는 귀한 종들'(단 12:3)이 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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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