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0일 소망교회 주일저녁예배설교
삼상3:1-21
꺼지지 않는 등불
어두운 곳을 가게 된다면 반드시 갖추게 되는 것이 등불 오늘날로 표현하면 전등과 같은 것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건전지가 소모되었다든지 아니면 불빛이 약해서 계획에 또는 해야하는 어떤 일에 있어서 차질을 빚게 될 때에는 상당히 마음고생을 단단히 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에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주님의 영광의 나라를 위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성도들의 모습에서 그 능력과 영광의 빛을 잘 나타내지 못한다는 의식을 느낄 때에는 그보다 더 참담한 느낌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 때에 우리 성도들은 어디에서 그러한 자리에서 벗어나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은혜의 자리에 나가게 될까요 그것에 대하여서 오늘 본문에서의 사무엘에 관한 말씀하심을 주목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0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5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 그리고 본문 19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섬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때였다는 것과 엘리의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라고 함을 말하면서 밤에 하나님이 성전에 있던 사무엘을 세 번 부르셨음과 엘리의 조언으로 하나님께 응답함을 배워 잠자리에 들었던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0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네 번째 여호와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큰 일을 하실 것과 엘리의 집을 영원히 심판하겠다고 함과 그 이유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에 대한 것을 지적하시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15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아침까지 누웠다가 엘리가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물어보게 되는 것과 사무엘이 그것에 대하여서 숨김없이 답변함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본문의 말씀인 19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심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 알았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제사장 엘리의 지도를 받고 있는 사무엘과 그 당시에 하나님의 계시가 사무엘에게 있게 되어지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하는 것과 또한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신다고 하신 것이 구체적으로 또는 실제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고 있는가 하는 이 두 가지입니다.
먼저 대제사장 엘리의 지도를 받고 있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계시를 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상적인 하나님의 질서적 차원에서 하나님의 뜻하심을 나타내면서도 그 질서라는 개념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입지 못할 때에는 질서적 정당함이 부인되어지고 주의 뜻하심 안에서 자신의 기뻐하시는 질서를 창조적으로 선택하시고 그 뜻하심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기준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입을 수 있는 자로 은혜를 베푸심의 자리에 세우심이 그것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들으심’이라는 이름의 뜻으로부터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한 존재적 입장에서 사실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엘리의 모습과 그의 아들들의 모습이라고 할 때에 그것은 진정 그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고 함의 뜻하심을 따라서 신앙의 양심대로 섬겼던 것입니다. 즉 부정되어질 수 있는 상대성 속에서도 주의 뜻하심 안에서 사실을 말할 수 있음을 기억할 때에 그는 엘리의 성전에서 그 제사장과는 달리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언급한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한 그러한 뜻하심을 따르는 가운데서 그에게서 나오는 말을 하나님께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사실구별을 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적당한 상식적 가르침으로 죄악을 죄악의 실제로 생각하지 못한 자들에게 큰 경종이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와 같은 자존의 하나님의 뜻하심에서의 실제적인 사실 규정을 받게 되어지는 것이 없는 가운데 '멸망의 가증한 것들'(마 15:24)이 있게 되지만 그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와 관련되어서 한 가지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은 마태복음 18장에 나타나는 천국에서 큰 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되고 그러한 자를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잃은 양을 위한 열정을 가지도록 말씀하심을 주목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서 받쳐진 어린 아이의 믿음의 오병이어로써 벳세다들녁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것과 주의 축사하신 것을 제자들이 나누어주어 사천 명을 먹이신 것과 같이 어린아이의 믿음의 중심을 가지게 되는 때가 있게 되어질 것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존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서 사실 규정을 다 상대적인 것으로 알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드린 것을 업신여기고 그렇게 행한 아이들의 잘못과 그와 같이 자존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죄를 실제적으로 가르쳐 회개하게 하는 것을 행하지 않은 자들이 책망받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존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사도의 가르침으로서의 성경말씀 안에서 그 삶의 정당함을 찾을 때에 과연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증거하는 등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로서 자신의 뜻하심을 스스로 절대 정당하심 안에서 나타내시고 상대적인 것으로도 절대의 말씀을 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는 세상의 빛이라고 함이 흔들리는 것과 같이 등불이 꺼져가는 듯한 모습에서 자유하지 못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엘리야도 그렇게 그러한 고민에서 굴속에 있고자 했던 것인데, 이것은 진정 예수님이 참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의 말씀하심 안에서 진정한 사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귀한 것이며 참으로 어둔 세상 속에서 주의 구원과 영광의 빛을 발함에 있어서 애통하는 종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의 등불로서 세상에 빛으로서 오신 예수님의 구원하심과 영광은 꺼지지 않는 등불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등불을 든 종들로서 신부된 자들로서 주 앞에 항상 깨어 있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http://geocities.com/vosscare
설교자
삼상3:1-21
꺼지지 않는 등불
어두운 곳을 가게 된다면 반드시 갖추게 되는 것이 등불 오늘날로 표현하면 전등과 같은 것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건전지가 소모되었다든지 아니면 불빛이 약해서 계획에 또는 해야하는 어떤 일에 있어서 차질을 빚게 될 때에는 상당히 마음고생을 단단히 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에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주님의 영광의 나라를 위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성도들의 모습에서 그 능력과 영광의 빛을 잘 나타내지 못한다는 의식을 느낄 때에는 그보다 더 참담한 느낌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 때에 우리 성도들은 어디에서 그러한 자리에서 벗어나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은혜의 자리에 나가게 될까요 그것에 대하여서 오늘 본문에서의 사무엘에 관한 말씀하심을 주목합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0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5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 그리고 본문 19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섬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때였다는 것과 엘리의 눈이 어두워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라고 함을 말하면서 밤에 하나님이 성전에 있던 사무엘을 세 번 부르셨음과 엘리의 조언으로 하나님께 응답함을 배워 잠자리에 들었던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0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네 번째 여호와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큰 일을 하실 것과 엘리의 집을 영원히 심판하겠다고 함과 그 이유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에 대한 것을 지적하시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15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아침까지 누웠다가 엘리가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물어보게 되는 것과 사무엘이 그것에 대하여서 숨김없이 답변함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본문의 말씀인 19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심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 알았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제사장 엘리의 지도를 받고 있는 사무엘과 그 당시에 하나님의 계시가 사무엘에게 있게 되어지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하는 것과 또한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신다고 하신 것이 구체적으로 또는 실제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고 있는가 하는 이 두 가지입니다.
먼저 대제사장 엘리의 지도를 받고 있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계시를 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상적인 하나님의 질서적 차원에서 하나님의 뜻하심을 나타내면서도 그 질서라는 개념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입지 못할 때에는 질서적 정당함이 부인되어지고 주의 뜻하심 안에서 자신의 기뻐하시는 질서를 창조적으로 선택하시고 그 뜻하심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기준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입을 수 있는 자로 은혜를 베푸심의 자리에 세우심이 그것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들으심’이라는 이름의 뜻으로부터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한 존재적 입장에서 사실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엘리의 모습과 그의 아들들의 모습이라고 할 때에 그것은 진정 그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고 함의 뜻하심을 따라서 신앙의 양심대로 섬겼던 것입니다. 즉 부정되어질 수 있는 상대성 속에서도 주의 뜻하심 안에서 사실을 말할 수 있음을 기억할 때에 그는 엘리의 성전에서 그 제사장과는 달리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언급한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한 그러한 뜻하심을 따르는 가운데서 그에게서 나오는 말을 하나님께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사실구별을 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적당한 상식적 가르침으로 죄악을 죄악의 실제로 생각하지 못한 자들에게 큰 경종이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와 같은 자존의 하나님의 뜻하심에서의 실제적인 사실 규정을 받게 되어지는 것이 없는 가운데 '멸망의 가증한 것들'(마 15:24)이 있게 되지만 그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와 관련되어서 한 가지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은 마태복음 18장에 나타나는 천국에서 큰 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되고 그러한 자를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잃은 양을 위한 열정을 가지도록 말씀하심을 주목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서 받쳐진 어린 아이의 믿음의 오병이어로써 벳세다들녁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것과 주의 축사하신 것을 제자들이 나누어주어 사천 명을 먹이신 것과 같이 어린아이의 믿음의 중심을 가지게 되는 때가 있게 되어질 것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존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서 사실 규정을 다 상대적인 것으로 알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드린 것을 업신여기고 그렇게 행한 아이들의 잘못과 그와 같이 자존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죄를 실제적으로 가르쳐 회개하게 하는 것을 행하지 않은 자들이 책망받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존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사도의 가르침으로서의 성경말씀 안에서 그 삶의 정당함을 찾을 때에 과연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증거하는 등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로서 자신의 뜻하심을 스스로 절대 정당하심 안에서 나타내시고 상대적인 것으로도 절대의 말씀을 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는 세상의 빛이라고 함이 흔들리는 것과 같이 등불이 꺼져가는 듯한 모습에서 자유하지 못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엘리야도 그렇게 그러한 고민에서 굴속에 있고자 했던 것인데, 이것은 진정 예수님이 참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의 말씀하심 안에서 진정한 사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귀한 것이며 참으로 어둔 세상 속에서 주의 구원과 영광의 빛을 발함에 있어서 애통하는 종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의 등불로서 세상에 빛으로서 오신 예수님의 구원하심과 영광은 꺼지지 않는 등불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등불을 든 종들로서 신부된 자들로서 주 앞에 항상 깨어 있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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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