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8월 27, 2005

열매들의 기쁨

2005년 8월 26일 소망교회 금요철야예배설교
슥10:1-12
열매들의 기쁨

상대적인 사회에서 어떤 이율배반적인 개념 때문에 실생활에서 어려움이 있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것 중에 하나가 생활 쓰레기들의 처리 문제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경우에 있어서도 그것이 잘 분해되어지지 않는 소위 썩지 않는 것으로, 아니 상대적으로 썩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것은 썩지 않음이 영광이 되고 어떤 것은 썩는 것이 영광이 되며, 또 썩는다는 것이 불행이 되어지고 썩는다는 것이 영광이 되어지는 그러한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열매라고 하는 생명체가 그러한 것의 증거의 자체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열매라고 하는 것이 심겨져서 싹을 틔운다는 것이 썩음의 불행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지만 그 결실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 영광을 말하게 된다고 하겠고, 그렇지 않는다면 소위 썩지 않는다는 것으로써 싹을 틔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지만 결국 영광이 없는 것으로써의 썩음으로 돌아감을 의미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어쩜 찌끼와 같은 것의 모습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열매에 비교되어지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모습이라고 함에, 비교되어지고 있음을 기억할 때에, 오늘 본문에서는 그 열매들의 기쁨을 말하는, 에브라임의 기쁨을 말하고 있음에서 성도들의 기쁨과 그 증거와 그 능력을 읽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8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짐을 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그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라빔이라고 함이 허탄한 것이며 복술하는 자들의 헛됨과 백성들이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니 하나님께서 목자들을 벌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적인 것은 수염소에 비교하고 있고 싸움에서 여호와가 그 백성들과 함께 함에 그 말탄 자들이 부끄러워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 있고 유다족속들이 견고하게 되고 요셉족속을 구원할 것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시며 그들을 들으리라는 것과 에브라임이 용사와 같이 기뻐하며 여호와를 인하여 마음에 즐거워하리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8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휘바람을 불어 모을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구속하셨음을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열방에 뿌리심과 그들이 원방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들의 자녀와 함께 다 생존하여 돌아올 것이라고 함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애굽 땅에서 돌아오며 앗수르에서 모으며 길르앗과 레바논으로 이끌어 가실 것인데 그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는 것과 그들로 고해(苦海)를 지나게 하시는데 그로 인해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며 애굽의 홀이 없어질 것을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 여호와를 의지하여서 견고케 하실 것과 그 이름을 받들어서 왕래할 것을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심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열매로 비교되어지는 자들의 기쁨과 그 삶에 있어서의 그 영광과 고난과 그들의 행보라고 함을 읽게 하심으로 주님의 길을 행하는 자들을 그들의 종으로 받으심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암 3:7) 그리고 그것이 또한 예비하는 종들의 기쁨과 능력이라고 함을 읽게 되며 또한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전반적인 스가랴서의 내용적 입장에서 이해하게 되어지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예루살렘을 다시 건축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하게 되어지는데 사람들은 안일한 열국과 같이 믿음으로 스스로 행하고자 하는 중심이 없고 그 재가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한 거짓된 신앙의 행위를 나타내는 그러한 자들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오늘 본문에서는 수염소에 비교되어지는 자들로 이러한 상태에서 목자가 없음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고 그 허상의 목자들을 치실 것에 대한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봄비라고 하는 것도 이스라엘의 비오는 절기의 첫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때에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고 말씀하시고 있고 그러한 가운데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는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번개라는 것을 이방신화를 고려해서 이방신의 특성으로 이해함보다도 이 번개라고 하는 것은 천둥보다도 먼저 사람들에게 비가 옴에 대한 것을 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름의 부딪힘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으로 기술적으로 보아도 비보다도 먼저 발생하는 것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아모스 3장 7절 말씀에서는 여호와께서 그 종들에게 알게 하지 않고는 결코 먼저 행하심이 없다고 하심과 같이 비를 구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판단의 빛을 부여하시고 그 가운데 되어질 비소식에 예비하도록 하심의 은혜를 말씀하심으로 오늘날 마지막 심판의 때를 살고 있는 현 교회의 시대를 실제적으로 의미하는 것으로써 역사적 그 때에 실제적인 주의 증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간의 갭이라고 하는 것 그 차이라고 하는 것에 있어서 그 역사적으로 되어질 일들에 대한 것을 말하게 되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그와 같은 것으로 주의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이 오심에 대한 그 때 당시의 실제적인 증거자들로서 성전을 건축할 때에 종말적인 양상이 있게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행하지 않고 안일하게 있으며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드라빔 즉 자신들의 기업의 증표로서 지계석으로써 역할을 하는 것을 옮겨놓아서 또는 힘으로 밀어붙여서 유익과 열매를 구하는 합당하지 못한 모습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행하지 않는 자들이 나와서 오히려 주의 백성들을 자신의 임의적인 신앙의 모습을 위한 것으로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 주의 백성들과 함께하심으로 그들의 신앙의 모습은 있으나 경건의 실제의 능력을 상실한 것을 그들 자신들이 스스로 알게 되어 부끄러워할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게 되는 그들이 그 하나님의 들으심에 따라서 에브라임이 그 마음이 즐거워할 것을 말씀하시는데 하나님 앞에서 열매되어진 자들 성도들로서 합당히 받으신 바된 자들이 그 마음의 실제적인 기쁨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이 또한 열방에 뿌리운다는 말씀을 하심을 듣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씨뿌리는 비유의 주님 말씀을 이미 본문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씨뿌리는 예를 들어 말씀하심이라고 하는 것이 정황적인 것에서 비로소, 또는 사람들이 알기 쉬운 것이라는 것에서 비로소 취한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이 씨뿌리는 비유로 성도들을 말씀하심에 있어서 주님도 그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의 신실하심을 아는 자들에게는 너무나 합당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들을 씨뿌림에 있어서 그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앗수르에서 나오게 하셔서 앗수르의 교만을 낮추신다고 하는 것과 애굽의 홀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은 상대적으로도 결코 핑계치 못할 복음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신다는 것과 세상의 왕권이라고 하는 것의 사실이 부정되어지는 것으로써 메시아의 절대 왕권으로 다스리심이 나타나게 될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씨의 영광 그 열매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썩어진다는 불행과 고통이라고 함이 있지만 그것이 이미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서의 합당함이 있게 된 것으로서 결코 불행의 사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은 죽으시고 상대적인 존재부정이라는 죽음의 상대적 판단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신 자존의 하나님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심으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의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사단은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하심을 이루는 것으로써 주의 온전한 뜻하심과 그 기쁨과 그 영광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는데 그것의 기본적이고 첫 번째가 되는 것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진정한 구주이시며 하나님이심을 믿는 이유와 그것의 자존적 절대 정당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이라고 하는 고해의 바다를 건넌다고 하여도 그것으로 인해서 그 광야에서 죽는다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하여도 부활의 주님을 따른 그 영원한 구원의 생명과 그 복음으로 낳아 길러낸 주의 성도들로 인하여서 주께 돌아와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하심을 따라서 이제 우리 성도들도 이른 비, 늦은 비와 같이 은혜의 비를 내리시는 주님 앞에서 믿음으로 주의 구원하심의 길을 예비하며 그 면류관을 주 앞에 드리며 세세토록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리에 기쁘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이와 같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행하는 주의 받으신 바되시는 열매들로서의 기쁨이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http://geocities.com/vosscare

설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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