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5월 05, 2005

선한 데 지혜롭고

2005년 5월 4일 소망교회 수요예배설교
롬16:1-27
선한 데 지혜롭고

소위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시기를 맞이하면서 내일이면 어린이 날인데 어린이들의 특성이라고 함을 부모된 자들이 잘 알았으면 하는 중심도 가지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아이들의 발달 특성이라든지 어떤 분별력이 있는 가운데서 좀더 우리의 아이들을 잘 양육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가정을 돌아봄에 있어서의 아름다움의 결실이 있는 자들을 교회의 직분자들로서 세우도록 말씀하신 것을 볼 때에 이러한 선함에 좀 지혜로운 자리에 서도록 함도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측면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로 선함을 알게 될 때에 복음으로 낳게 되어지는 믿음의 후손들을 영적인 특성을 가지고 지도함에 있어서 일말의 분별력을 가질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하심의 은혜도 마음에 두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아이들의 지혜를 말할 때에 아이가 '영악'하다라는 표현을 할 수도 있는 것을 주위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다른 이를 괴롭히는 형태에 있어서 즐김이라고 하는 못된 모습에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그냥 한때 그렇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하게 지혜롭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영적으로 영적인 삶에서 선한데 지혜롭도록 권면하며 그 사실을 믿음으로 보며 축복하는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17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과 본문 21절에서 27절까지의 말씀으로 나누어봅니다.

첫 번째 본문의 말씀인 1절에서 16절까지의 말씀에서는 겐그리아 뵈뵈집사에 대한 천거를 비롯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문안하라고 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본문의 말씀인 17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참으로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 권면이 이어지고 있는데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를 떠나라고 하며 그들의 악함을 지적하며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본문의 말씀인 21절에서 27절까지의 말씀에서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문안을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성도를 견고케 하시는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세토록 영광이 있음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그렇게 될 줄로 믿음으로 아멘으로 글을 맺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로마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서로 문안함에 있어서 권면함에 대한 간략한 언급입니다. 그것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의 문맥적으로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의 한 맺음말에 해당되어지는 말씀인데 그러한 가운데서 그 증거의 내용적인 것을 간략하게 또는 함축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또한 주목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여러 성도들의 교제 속에서 되어지는 이 권면이라고 함을 말함으로 서로 현실적인 직접적인 교제를 위해 문안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고 그 가운데 권면이라고 함이 있는데 그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사실 교제의 기본적인 지혜로 나타난다고 하겠습니다.

바울이 선이라고 함을 말할 때에 그 전제적으로 언급한 것을 주목하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합력하여 선을 이룸에 있어서 로마의 교회의 모습에서는, 사실상 죽음의 공회라고 할 수 있는 협력의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파 성도들과 헬라파 성도들의 율법을 준수함과 믿음이라고 함에 대한 견해라고 하는 것이 그 임의적 신앙적 열정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러한 로마의 교회에 '한 마음'(롬 15:6)을 품을 것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고린도 교회에도 증거한 내용으로 '같은 믿음의 마음'(고후 4:13)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선한데 지혜롭고' 함에 있어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고 그 가운데서 실제적인 사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믿음과 그 가운데서 진정한 성도의 교제와 그것을 위한 인내의 사실을 힘써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주의 성도들이 그와 같은 믿음으로 섬길 수 있도록 각자 주께서 주신 뜻하심이 무엇이며, 주께서 주신 달란트가 무엇인가를 참으로 지혜롭게 분별하고, 믿음 안에서 형제들을 받고, 그 주신바 달란트를 힘써 행하게 돕는 것과 같은 지혜로움을 나타내도록 하라는 말씀으로 받게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언급하게 되어지는 것은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라고 함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미련하다는 말은 '아케라이우스'라는 말입니다. 그 뜻 '섞이지 않은'(unmixed), '단순한'(simple)이라는 뜻입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게 되어지는 악이라고 함은 역시 선에 대한 반립적인 입장이라는 것으로 표현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정당함을 찾는 가운데서의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으로써의 그 자체적 불순종과 그에 다른 생활적 불순종이라고 함이 그것입니다.

즉 임의적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가운데서의 생활의 완전성을 말하거나 임의적으로 믿음이라고 함에 있어서 그것의 충족성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에서의 사실 규정을 말하기 보다는 현상적 입장이라고 함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도 바울이 책망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것은 현상적입장이라고 함의 상대적인 보편적 판단으로 일관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절대 보편적 재가라는 것을 마음에 두지 못함을 지적할 수 있게 되며 이것이 악으로 나타나며 규정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진정으로 형제들을 믿고 있다고 함에 있어서 그 형제된 로마의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음에 대한 사실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에 따른 사실분별이라고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가운데서 그러한 것의 고통이라고 함이 현실적인 고통의 사실로 자리매김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바울이 로마교회에 증거하는 내용적 중심을 기억할 때에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분별을 행할 때에 비로소 '악'이라고 함에 미련하기를 원한다는 것의 의미를 주목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미련'이라는 말은 그 말만 볼 때에는 어려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고 '단순하게 생활하는 것' 또는 '도덕적으로 악한 행실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미련하기를 원한다는 이 말도 로마서 전반적인 가르침 안에서 규정되어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때에 바로 선함을 위한 노력들, 주 안에서 같은 마음, 즉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한 시비를 거쳐서 현실의 사실을 판단하게 되어지는 가운데 형제들을 그 믿음 안에서 받고 교제의 사실을 믿고 힘써 성도의 교제의 자리에 나가게 되어지는 노력들, 이러한 것의 순수성을 '단순성'이라고 함을 전제적으로 한 반대적인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선'이라고 함의 반대적 입장으로 현상적인 인식이 가능함을 기억할 때에 '악'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에 대한 단순성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게 되어지는 그러한 성도들의 선한 중심에 상대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를 통해서 사실들을 섞어서 하나의 죄악의 쓴 뿌리의 결정체를 형성하지 않는 것 그것을 악에 대한 단순성으로써 인식되고 있고 그것을 '악에 대하여 미련하다'는 것으로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상대적으로 반대말로 인식이 되어지는 것과 같이 선함이 하나님을 인해서 생각과 판단과 생활이 되어진다면 악함은 그러한 것을 행하지 않는 불순종의 모습인데 이러한 불순종의 모습이 없기를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람들은 참으로 지혜롭기만 추구하고 있지 그 지혜가 선함이라고 함과 악함으로 열려진 것에 대하여서는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불가지론적인 세상에서, 무엇이 선이고 악인가에 대한 기준의 부재라는 생각에서 자기 본위적 선과 악으로 하나님 앞에서와 하나님 안에서 주신 사람들의 일반적인 보편적 의식이라고 함의 사실을 힘써 부인하고 자기를 위한 선을 추구하는 가운데 참으로 일그러진 모습들을 봅니다.

하나님 앞에서와 우리 인생에게 주신 일반적인 보편적 당위성을 생각하여서 선과 악을 분별하는 가운데 참으로 건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쓰고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더욱 우리 성도들은 그러한 일반적인 도적적인 개념에 비로소 그러한 판단을 행한다면 로마의 교인들과 같이 여전히 고통 속에 있을 수 있기에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찾는 가운데서의 사실을 분별하는 가치관과 그 선함을 따라서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허락되어진 우리의 삶을 바르게 인도하여 나가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받은 자로서 합당한, 아름다운, '선한 데 지혜롭고 악에 미련한 자'로서의 하나님께 순종하시는 가운데, 하나님께 견고하게 세움을 받으며 하나님을 세세토록 찬송하는 자리에 서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그리고 함께하시는 성도님들과 소망교회 위에 있으시기를 주 예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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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